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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Jan 11. 2018

연애도 좋은 경험이라 말하신다면

잊고 싶었던 순간, 다시 떠올리는 이유

자정이 다 된 시각이지만 쓴 맛 나는 싸구려 커피를 탔다. 이 밤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려는 몸부림, 탁자가 흔들리면 아슬아슬하게 커피가 출렁인다.




지나간 연애의 순간을 복기했다. 의도치 않았지만 생각나게 되는 어떤 순간에.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말을 하다 보면 그 무언가 정리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나는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러고 보면 말다툼을 할 때 대화를 회피하곤 했던 나는 헤어지고 나서도 스스로와 대화할 기회를 애써 회피했다. 헤어질 때 함께 썼던 일기장을 줘 버리고 거의 모든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 그냥 줘 버리고 말았다. 기억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썼고 우리가 헤어진 이유도 그냥 잊히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긴 건, 헤어지고 나서도 1년 반을 기다렸던 것이다. 나도 몰랐는데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날이 지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단 사실은 꽤나 충격이었다. 그제야 점점 헤어진 것이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얼마 전 그가 꿈속에 나와 내가 이루지 못했던 그날의 순간을 대신 보여줬다. 그는  마침내 내게 돌아왔고 나는 그게 꿈이라는 사실이 못내 서러워서, 아직도 이런 꿈을 꾸는 내가 창피해서, 펑펑 울었더랬다. 별 것 아니라고 치부했던 평범한 연애가 내겐 참으로 별 거였다는 게 속상한 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힘들어서, 지쳐서, 미안해서, 기다리게 해서, 내가 너무 나쁜 것 같아서... 우리는 그런 말들을 나누고 헤어졌다. 차라리 좀 더 솔직했더라면.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은 사실은 그가 한때 나를 정말 좋아해 줬다는 것. 이 사실 덕분에 모든 게 이해할 수 없는 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은, 나 또한 그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계속 좋아하고 싶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영원한 사랑, 영화 속에 나오는 것 같은 평생에 한 번뿐인 사랑,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었던 나는, 정작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참기 힘들었다. 내 감정의 유효기간은 생각보다 턱없이 짧았고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사랑이야.. 라며, 그것도 좋은 경험이야.. 라던.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을 위한 경험인 걸까.


경험이란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가끔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가끔 아주 많이, 또는 언제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태어났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은 이해받기 위해 나를 태어나게 만든 것이다.


내 존재의 이유를 찾기 위해, 나는 나와 다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나는 그 세계를 위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침내 그 순간은 되돌아와 나에게 또한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훗날 위로가 되기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무지와 생각의 한계를 걷어내노라면 세상과 동떨어져 대척점에 서 있는 것만 같던 나의 시선이, 거울 속 내 것과 다름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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