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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06. 2019

네가 아닌 걸 알지만, 널 좋아해

고백의 의미

연애 경험이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애매한 나. 가끔씩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이 있다. 


넌 고백 많이 받아봤을 것 같은데. 


그것이 위로인지 아닌지 진심인지 아닌지 별로 해줄 말은 없고 그냥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가끔 그런 말을 듣다 보면 답답함에 내 가슴을 내 머리로 쿵쿵 쥐어박는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물론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드물게 몇 번의 고백을 받아본 적이 있긴 하다. (물론 내가 짝사랑한 수십 번의 경험은 제외하고 나를 좋아해 준 고백에 한정해 말하는 것이다.) 그건 모두 나 어릴 적 남자 사람이 여자 사람보다 넘치게 많았던 학과를 다닌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이지 그 고백이란 것들이 하나같이 내겐 별로 좋은 기억들이 없었다. 내가 답답한 건 고백을 많이 안 받아봐서가 아니라, 고백이란 게 내겐 별로 의미 있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연애로 이어지지 않은 건 물론이거니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그를 슬프게 만들거나, 그래서 나는 더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기 위해 노력했고 고백은 곧 아무 일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고백이란, 그래서 어제 뭘 먹었는지, 몇 시에 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그저 그런 어제 일처럼, 나에게도 그에게도 별로 의미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뜬금없이 오늘, 그런데 문득, 아침에 옷걸이를 응시하면서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리고 뭔가 퍼즐 조각이 완성되는 것처럼 어떤 공통점을 깨닫게 됐다. 나를 좋아한 사람들은 내게 고백할 때, 항상 그런 말을 덧붙였다는 걸.


네가 고백을 안 받아줄 것 같지만... 


그러고 보면 상대방은 이미 내게 긍정적인 답변이 오리란 걸 단념하고, 거절당할 걸 작정하고, 그런 말들을 내뱉곤 했었다. 내가 "음.. 근데... 아니..."라고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ㅡ 그래,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의 빠른 답변과 그의 빠른 포기. 고백 타임 후 그 자리에서 관계가 딱 한 번에 클리어하게 정리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가 왜 고백을 안 받아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맞다. 나는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 그걸 잘 알아본다 사람들은. 맞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다려준 사람은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돌리려 애쓴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고백은 인스턴트 카레같이 전자레인지에 급히 데워진 마음같이 보였다. 나는 점점 더 '고백'에 의심을 품었고 고백받는 것 자체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들의 고백이 금방 식어버리는 열정에 불과하단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 깨닫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며 고백을 한다는 건 ㅡ정말 절절이 마음을 다 쏟아붓고 그 마음을 비워내고 또다시 쏟아붓고, 하지만 뻔한 결말이 예상되기에 억지로 마음을 게워내야만 했던 고통이 수반된 과정을 거치고 나서 비로소 마지막으로 한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 마디 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물론 고백을 했던 사람들이 모두 다 그렇게 심각했을까?  그건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내가 대수롭지 않게 치부한 것처럼 그런 일시적인 감정은 아니었던 게 아닐까... 그런 뒤늦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노래 가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는 젊은 날 누군가 나를 좋아해 주는 게 어쩌면 그 사람에겐 당연한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마음이 그에게 닿지 않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서로 맞지 않다면, 고백을 받아주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내 기억 속 찰나에 불과했던 고백들이... 이렇게 생각을 오래 하게 만드는 걸 보면,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큰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좀 더 소중히 그 마음 간직할 걸. 모래사장에 글씨를 쓰고 파도에 휩쓸려나간 자리를 바라보듯 나는 그 옛날 고백의 말들을 곱씹었다.


네가 아닌 건 알지만...


그 말과 함께, 고백을 애써 부정하려 했던, 고백이 별 의미 없는 거라고, 용케 추스르고 버틴 나날들을 함께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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