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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16. 2019

무궁화호 인생

대전 가는 길, 기차 풍경


기차를 기다린다.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으니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고, 3번 승차장이라는 걸 알면서도 플랫폼을 이리저리 산책해 본다.      


사실 기차를 많이 타보진 않았다. 고향에 내려갈 때에는 무엇을 타고 가느냐 고민할 필요도 없이 거의 대부분 버스를 타고 갔다. 기차역이 내가 사는 집과 거리가 있고 대신 버스터미널은 가까웠기 때문에다. 기차는 교통수단이라기보다 낭만을 담당했다. 매번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곳, 여행을 갈 때는 ‘기차여행’이 먼저 떠오르고, 그래서 기차 시간표를 먼저 찾아보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기차여행. 대전에 계시는 한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가는 길이다. 낯선 도시인 대전까지는 왠지 기차를 타고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사실 대전역에 있다는 성심당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반을 차지하기는 했다.     


육중한 기차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재빨리 기차에 타기 시작했다. 나는 기차를 카메라에 담느라 그 앞에서 서성였는데, 역무원은 나를 신경 쓰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기차에 오르자마자 기차는 출발했다. 기차는 유독 역에 정차하는 것이 잠깐 동안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기차 안은 어두웠다. 낮이었지만 흐린 날이었고 내부는 넓었지만 어두운 천장이 덮고 있었다. 사실 어둡다는 의미는 빛의 양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세월이 드리운 그림자를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의자의 천에서 쿠션감을 주는 털이 송송 빠진 구석이라든지, 기차의 외벽 창틀과 바닥 이음새에 사이사이 낀 때라든지, 감출 수 없는 낡음은 분위기를 한층 어둡게 돋웠다. 내 자리는 16번이었고 아쉽게도 창가 자리가 아닌 통로 자리였다.     


허세를 부리는 어떤 무언가가 있다면 책과 공책이다. 

또 쿨쿨 잘 걸 알면서도 나는 길을 떠날 때 그것들을 기어이 챙겨야 안심이 된다. 무거운 배낭을 짐칸이 아닌 좌석에 안고 타는 것도 책 받침대로 쓰기 위해서, 간이 책상으로 쓰기 위해서다. 이번에도 역시 배낭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배낭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다리 하나를 꼬고 책을 펼쳐 들었다. 편-안-하다. ‘아, 이게 바로 여행이지.’ 여행 기분을 내는 방법은 별 게 없다. 이런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성공한 인생일까 갸우뚱하며 이내 긍정해 본다.     


버스를 탈 때는 책을 읽는 것이 어딘가 죄스러웠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차 안에서는 책 같은 거 읽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지만 기차는 덜컹거리는 소리가 시끄러울 뿐 미동은 덜해서 책 읽기에 좋았다. 다만 기차는 중간중간 정차역이 있어 그때마다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부산함이 있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게 된다. 


군인 두 사람이 앉는다. 안경 쓴, 웃옷은 양복인데 하의는 운동복을 입은 남자도 탄다. 그 앞에 탄 한 아기 엄마가 아이를 안고 남자에게 트렁크를 위에 올려달라고 부탁한다. 남자는 참 적극적으로 으쌰 하고 트렁크를 올려준다.      


“여기 자리네? 안에 앉을래요, 아가씨?”      


창가 자리였을 한 아주머니는 내게 창가에 앉겠느냐고 물어보셨다. 지금껏 몇 시간을 빈자리로 남아있던 창가 자리에 이제는 미련이 없었다. 괜찮다고 말씀드리니 “곧 내리나 보네. 아이고 아무 데나 앉지 뭐.”라며 혼잣말을 하신다. 웃옷을 벗고 또 스카프를 벗고 그것들을 창가 옷걸이에 걸고 커튼을 치고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몇 번이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신다. 나는 눈과 귀가 따로 놀며 행간을 읽는 미동이라곤 없던 눈동자를 거두고, 책을 덮어버렸다.      


책을 가방에 넣지는 않고 그냥 기차 안을 응시했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다시금 평화가 찾아왔다. 기차 안은 파동이 일었던 물 표면이 다시 수평을 되찾은 것처럼 조용했다. 덜컹덜컹 기차 소리는 더 커지지 않고 작아지지도 않고 일정한 데시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난 기차에게 시간을 빚졌고 기차는 또 나에게 시간을 빚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차는 자신의 몸을 내어 나에게 3시간을 건너뛰게 해 주고, 나는 기차에게 그런 3시간 동안 내 시간을 쓰도록 허락했다. 사실 누군가 내 시간을 써 줘서 고마운 마음이 더 크긴 하다.      


백수라서 시간이 남아돈다는 말은 반은 참말이고 반은 거짓말이다.

 백수라서 돈도 없고 가진 게 시간밖에 없어서, 나에게 시간은 내 유일한 재산 또는 나를 대체할 수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꽤 고민하게 된다. 어떤 일이나 성과를 낼 수 있는 효율성을 따진다기보다 가장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관건이다.      


나에게 무궁화호를 탄 것은, KTX를 타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더 오랫동안, 더 충분히 기차 안에서 여행 느낌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빨리 대전에 도착한다고 해도 사실 대전 시내를 구경하는 것보다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에겐 더 편안한, 익숙한, 만족스러운 여행의 시간이었다. 


무궁화호의 구석구석 낡은 때와 낡은 소리, 낡은 분위기, 왠지 모르게 낡은 사람들까지. 이 기차는 더할 나위 없이 내 시간을 차지하기에 적당한 것이었다. 지금 와서 보니 후회가 될 정도로 기차 안에서 사진 한 장 찍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솔직히 자다가 깨다가 책 읽다가 자다가 다시 책 읽다가... 그러다보니 시간이 금방 가 버리긴 했지만, 그만큼 그 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황량하게 넓은 천정과는 달리, 높다란 네모진 좌석은 내 앞을 가로막는 것처럼 답답기도 했지만 또 독서실 책상처럼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느낌도 들었다. 


나는 너무 세련된 사람이 아니고 KTX처럼 급하지도 않다. 나는 무궁화호의 낡은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었고 그 풍경의 단편이 된 것이 좋았다. 어쩌면 난 무궁화호를 닮은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천천히 소리와 풍경을 음미하며 이 낡은 기차 안에서 보낸 시간은, 결국 내가 아끼는 하루의 몇 시간을 차지하고야 말았다.      


무궁화호와 나, 우리는 서로 빚지고 서로의 일부를 선물했다. 고맙게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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