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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Mar 14. 2019

나의, 최종 불합격들

2019년 3월 14일

마음이 쓰레기 같을 때,
그 쓰레기를 차곡차곡 모아야 한다.
기록해야 한다.


요즘은 하루하루 나의 불운을 곱씹는 날들이다. 침대에 모로 누워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가, 카페에 앉아 창밖으로 눈을 돌리다가, 육교에 첫발을 내딛다가, 불현듯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날들이었다. 불합격, 불합격 때문이다. 대학교도 덜컥 수시로 합격하고, 직장도 첫 번째 원서 낸 곳에 합격하고 별문제 없이 인생을 살았다. 합격에 익숙했던 나는 불합격에 너무나 취약한 사람이었다.


첫 번째 불합격
안타깝고 죄송하게도, 이번에는 함께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애정을 가지고 자소서를 쓰고, 그리고 몇 주 간 추가 질문이 이어지던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인생을 탈탈 털어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반추의 시간을 거쳤다. 그러고 나서 가까스로 면접 기회를 얻어낸 곳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메일이 왔을 때, 마치 합격이라도 한 것처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지만 면접을 보려니 또 이것이 문제인 게, 나 스스로 말하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인터뷰 준비 대신 발표 자료를 만들기로 했다. 몇 주 동안 틈틈이 메모했던 회사 정보, 홈페이지와 SNS, 회사 관련 기사와 인터뷰 등을 정리하기로 했다. 와이파이 때문에 매일 6~7시간씩 이틀을 꼬박 카페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PPT를 만들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 당일 꿈을 꿨다. 면접을 보는 시각, 회사 대표와 팀장이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약 30분이 지난 시각임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기에, 나는 그들을 흔들어 깨웠다. 깨우는 와중에 꿈에서 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꿈의 결과는 '두 사람은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였다.


두 번째 불합격
눈치 보지 말아요. 벼리 씨는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니까요.  


첫 번째 불합격이 가슴 아팠던 이유는 사실, 두 번째 불합격이 이어지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은 날, 나는 이성을 잃고 그에게 연락하고야 말았다.


먼 옛날 같은 가까운 옛날, 오랜 세월 같던 짧은 시간 동안 함께했던 사람. 그는 기어이 나에게 마음 한편을 온전히 내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못내 원망스러웠지만, 그를 탓할 순 없었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내가 끓는점 임계치를 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나는 더 빠른 포기와 체념이 가능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그토록 좋아하면서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던가. 나는 그야말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것이 설사 최선의 방법은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인내심과 감정 컨트롤을 최대한 발휘했던 시간이었다.


쿨하게 (보이기 위해) 뒤돌아서 놓고, 뒤늦게 이제야 그에게 연락했다. 내가 그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정신이 없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궁금했던 질문을 이젠 정말 그 답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나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할 만한 매력이 없는 걸까요?'


그는 아마도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 당사자였으니까. 그는 면접관과 마찬가지로, 내게 호기심을 보이고 면접의 기회를 줬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면접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와 이별 아닌 이별이란 결과를 마주했다. 그는 말수가 적었지만 그가 내게 했던 모든 흩어져있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았을 때, 그것이 '최종 불합격'이었음을 안다.


결국 그는 이번에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의 질문과 요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게 나에게 거절의 의사표시를 했고, 또 "눈치 보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또 그의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눈치 보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음 불합격


어쩌면 불합격이 이어질 것만 같다. 인생사 새옹지마, 지금까지 너무 무사 평탄한 인생을 살아온 것이 후회될 정도로 앞으로 이어질 불합격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그 불합격들이 나는 겁이 난다.


입사를 지원하고, 또 좋아하는 이에게 고백하는 것은 어쩌면 동일선상이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니 나를 받아주세요"라고 구애하는 것이니까. 하필이면 두 가지 일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일련의 불합격은 한번 난 상처에 또 한 번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주고 적잖이 큰 마음의 상처가 되어버렸다. 나는 매력 없는 사람이란 게 스스로 원망스럽고 부끄럽고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다.


나는 지금 이 고통이 참으로 가소로운 것이란 걸 안다. 고작 몇 번의 입사지원과 불합격, 고작 한 사람의 거절에도 나는 휘청휘청 거리고 말았다. 고통을 양으로 질로 비교할 순 없겠지만,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나의 불합격이 배부른 고민처럼 보일 것만 같아서 그게 제일 두렵다.


변명을 하자면 그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이유는, 희망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결과를 떠나서 입사를 지원하는 과정, 그에게 고백했던 시간은 나에게 참 소중했다. 내가 진심을 다해 그것을 향해 몰두할 대상이 있었음은, 축복이고 행복이었다.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린 직후, 그 허무함은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오히려 이따금 슬퍼할 수 있었던 건 차라리 다행이었다. 허무함이란 바이러스가 나를 덮쳐올 때 오히려 슬픔이란 감정으로 나를 보호하려 했던 게 분명하다. 목적 없이 걷던 길, 가사도 들리지 않고 그저 볼륨을 높여 틀어놓던 음악, 이유 없이 구겨 넣었던 입 안의 음식들, 무작정 떠나온 고향길 버스... 누군가 질문을 해도 내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이 생겨나지 않았다. 내 마음속 감정이 올라오는 통로에는 기쁨을 가로막는 커다란 담벼락이 생겨난 것만 같았다.


앞으로 더한 불합격들이 존재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그 밥조차 빌어먹게 될까 두렵다. 나의 능력 없음을 깨닫고 나의 매력 없음에 좌절하고, 이런 순간을 감내하는 것이 앞으로 견뎌야 할 숙명인 걸까. 내가 걸어온 길은 내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일까. 끊임없이 나와 주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경로를 의심하는 날들의 연속.

나의 불합격들은, 나의 역사가 되고 말았다.
지치지 않고 많은 이들은 말하곤 하지. 나를 사랑하라고.
그렇다면 나를 사랑해야만 하는 나는 이 불합격들을 사랑해야만 한다.


언젠가 나를 좌절시키고 말았지만, 때로는 과거의 흔적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힘들고 말겠지만, 기어이 나의 일부분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최종 불합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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