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오늘 갈 곳이 있어요
와우산로 29길, 하지만 ‘서교동’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동네. 홍대입구역에서 내비게이션을 켜고 최단거리로 찾아갔더니 골목 구석구석을 헤매게 된다. 알고 보니 여기, 홍대 정문 앞길에 있는 산울림소극장에서 찾아가는 게 더 쉽다.
이곳은 작년 겨울 12월에 문을 열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 사이에 꽤 알려지고 있다. 바로 ‘이 세상 괜한 걱정(no worry salon)’이라는 어느 시집 제목 같은 이름의 가게다.
이곳 메뉴판을 보면 주인장이 돈을 벌려고 이 집을 차린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술과 안주를 팔기는 하는데 외부음식 반입 대환영, 게다가 컵라면이 비치되어 있으니 마음껏 먹으라고까지 말한다. 주인장이 친절한 걸까 아니면 그냥 귀찮은 걸까.
오픈 시간인 8시에 딱 맞춰서 갔더니 아직 손님은 없었다.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 초록색 조명이 간간이 비추고 널찍한 엔틱 테이블이 눈에 띄는 내부 공간. 이곳의 첫인상은 예전에 들었던 어떤 동화를 생각나게 한다. 빈 방을 가득 채워보라는 임금님의 말에, 어느 처녀는 양초를 구해 와 그 방을 빛으로 가득 채웠다고 했다. 아무도 없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가득 차 있는 그런 공간 같았다는 말이다.
사실 이곳에 올 때에는 준비물이 있다. 아니, 꼭 준비해오지 않아도 누구나 다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걱정’이다. 내 걱정, 남 걱정, 세상사 오만 걱정까지,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오기 좋은 곳은 아마 여기밖에 없을 것이다.
테이블마다 걱정을 쓸 수 있는 종이와 연필이 있었다. 이곳에선 걱정을 쪽지에 써서 유리병 안에 놔두고 가라고 말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걱정들이 각각 유리병 안에 담겨 한쪽 벽 코너에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알알이 예쁜 유리병들이었지만 그 안에 울고 웃는 걱정들이 있을 것이다. 낮이 되면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주전자와 컵처럼 움직일 것만 같은 살아 숨 쉬는 걱정이 담긴 병들.
사실 인스타그램으로 예쁜 사진만 보며 눈팅만 하는 그런 가게들이 참 많은데, 이 가게도 그런 가게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주의 걱정’을 보고, 이곳에 방문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주의 걱정이란, 주인장이 매주 바꿔다는 걱정 메뉴판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를 혼자 사랑하는 것 같아 걱정인 사람들’, ‘연휴에 할 게 없어서 걱정인 사람들’, ‘더럽고 치사해서 회사 때려치워야 하나 걱정인 사람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은 걱정들이 수두룩하다. 이 가게는 친절하게도 말해준다. “이번 주 노워리 살롱은 그런 분들을 위한 공간입니다”라고. 소주 한 잔 원샷해야 할 것만 같은 정곡을 찌르는 걱정들, 그리고 그런 걱정하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다고 툭 내뱉는 이 무심한 위로를 봤나.
‘이주의 걱정’에 해당하지 않아도 올 수 있나요?
물론이다. ‘이주의 걱정’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와서 그저 자기의 걱정거리 풀어놓으면 된다. 이곳은 이 세상 모든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니까.
걱정을 함께 나눈다는 건, 다만 걱정을 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위안이 된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쓰고 간 걱정들을 보면 ‘걱정도 참 많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다. 남들 걱정은 괜한 걱정인 것 같은데 내 걱정은 공자님 예수님이 와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은 걱정이니, 참 별일이다.
이곳에 오면 걱정 쪽지를 남기면 알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 그 쪽지에 답장을 남기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이주의 걱정’을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이 살롱의 주인장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남들 걱정하며 이런 가게를 열기까지, 걱정이 너무 많아서 이 가게를 열게 된 걸까, 아니면 너무 긍정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괜한 걱정 하지 마라고 이 가게를 연 것일까. 이 가게에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주인장과 잠깐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사람들이 걱정이 많다는 걸 아시는 걸 보면, 본인도 걱정이 많은 분이신가 봐요?
작년에... 걱정을 아주 심하게 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걱정이었을까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누구에게도 말 못 하고, 다른 어떤 일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고민하고 걱정하던 일이었는데... 사실 지금도 그 걱정이 해결된 건 없어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걱정이 잊히지도 없어지지도 않고, 그냥 무뎌질 뿐이죠.
걱정이 그냥 무뎌질 뿐이란 얘기에 무척 공감했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세상 또한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지금 걱정이 해결되는 건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으니... 그저 걱정을 또 다른 걱정으로 대신할 뿐, 아니면 다른 생각으로 그 걱정 잠시 잊을 뿐.
혼술을 하고 있는 손님이 있으면 다른 단체손님들 때문에 시끄럽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하는 주인장. 가게 문 앞까지 왔다가 발걸음을 돌리는 손님들이 있으면 다음에 찾아올 때 술 한 잔 대접하겠다는 공지를 하고, 심심해 보이는 손님에게 다가가 은근슬쩍 맞은편에 앉는다. 걱정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을 방치하지 않는, (아마도 성격상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배려심 넘치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가게를 열게 되었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사람들이 유리병에 담아두고 가는 걱정 쪽지들은 어떻게 될까.
“걱정이 유리병 속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 후에 꼭 다시 와서 그 걱정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걱정을 쓰고 유리병 안에 조심스레 넣으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설레기까지 한다. 타임캡슐을 기다리는 심정처럼, 내 걱정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해졌다. 한 달 뒤에 그 걱정 보러 꼭 다시 와야 할 것만 같은 이곳.
이번 주에는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더 세게 해 달라는 말을 못 해 걱정인 사람들’을 보고 오라고 말한다.
만약에 이곳에 오고 싶어도 내 걱정이 별일 아닌 것 같아 걱정이라면... 그 걱정 잠시 내려두러 이곳에 와 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