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잡지를 찾아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곳
합정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곳. 지하로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란 유리창이 있고 그 너머 잡지가 한쪽 벽면을 채운 게 보인다.
지하 계단을 한 계단 더 내려가자 스탠딩 조명이 먼저 맞이한다. 그리고 그 옆 닫혀있는 커튼을 열어젖혔다. 마치 앨리스가 지하 땅굴을 발견할 때처럼 조심스럽게, 그리고 신기한 느낌이다. 찾아올 때마다 신비로운 느낌이 들게끔, 어쩌면 이 클럽의 주인은 일부러 지하 공간을 고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녕 하세요?”
딱 봐도 낯선 사람인 게 티가 나도록 그렇게 등장하자, 주인은 대번에 "처음 오셨어요?”라며 묻는다.
주인은 종이잡지클럽이 멤버십 제도로 운영되고 있음을 알려줬다.
- 일일회원: 지정 날짜 잡지 무제한 열람, 3000원
- 월간 회원: 지정 날짜부터 1달간 잡지 무제한 열람, 뉴스레터 발송, 클럽 Talk 우선 신청, 10000원
- 연간회원: 지정 날짜부터 1년간 잡지 무제한 열람, 뉴스레터 발송, 클럽 Talk 우선 신청, 스크랩북 개설, 75000원
내가 고민하자, 주인은 한번 이용해 보시고 나가실 때 결정하시고 계산하면 된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공간은 대략 세 곳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입구에서 카운터까지는 평대가 있고 잡지들은 주로 누워 있다. 다음으로 낮은 책장을 사이로 그 너머 큰 네모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벽 선반에는 잡지들이 가로로 쭉 진열돼 있었다. 마지막으로 아까 유리창으로 보았던 커다란 한쪽 벽면에는 역시나 잡지 표지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고 맞은편에는 1인용 소파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그곳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잡지를 읽고 있었다. 세 사람은 테이블에서, 한 사람은 소파에서 각자 집어 든 잡지를 읽고 있었다. 무척 조용히 잡지를 넘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 내가 느낀 그곳의 이미지는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얘기였음을, 뒤에 가서 알게 된다.
이곳의 주인장은 처음 들어온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찾으시는 잡지가 있나요?"
"외국 잡지 좋아하세요, 한국 잡지 좋아하세요?"
"주로 어떤 잡지를 보셨어요?"
갑작스러운 질문공세에 당황했지만, 나중에 회원가입 신청서를 받아 들고 더욱더 당황했다.
- 현재 하고 있는 일은?
- 좋아하는 음악가와 곡은?
-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 좋아하는 여행지가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최근에 본 텍스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 3월의 주제는 ‘미래’입니다. 당신이 꿈꾸는 미래는?
이 질문지는 ‘취향’을 물어보고 있었다. 사람의 취향을 물어본다는 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래서 아주 사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는 명확하다. 개개인의 취향에 딱 맞는 잡지를 큐레이션해 주기 위해서다.
종이잡지클럽에는 수많은 잡지들이 있었다. 패션잡지, 문학잡지, 영화잡지 등 흔히 우리 주변에서 봐 왔던 월간잡지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 잡지들, 그리고 요즘 나오는 계간 잡지, 독립 잡지들까지. 종이잡지클럽은 다양한 잡지를 아우르고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넓었지만 잡지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곳에서는 너무 종류가 많아서 헤매기 십상이다. 바로 이럴 때,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잡지를 몇 개만 큐레이션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평대에서 우연히 손에 집어 든 Favorite 이란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때 주인장은 슬그머니 다가와 두 권의 잡지를 내민다. '어반라이크'와 '부엌'이라는 잡지다. 나의 취향을 고려했을 때 이 두 권의 잡지를 읽어보면 좋겠다는 주인장, 아니 큐레이터의 세심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센스만점 달다구리까지!)
약 한 시간 동안 잡지 두 권을 정독하면서, 이곳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그 매력 포인트를 꼽아 보자면, 우선 정말 다양한 잡지, 보기 힘든 해외 잡지를 구비해 놓았다는 점에서 질적 양적으로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가 그 첫 번째, 두 번째는 소파 또는 테이블에서 메모를 하며 깔끔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잡지를 읽을 수 있다는 공간성을 들 수 있다. 세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주인장의 빼어난 큐레이션이다.
종이잡지클럽은 인스타그램에서 '오늘 넘겨본 잡지'라는 꼭지로 매일 하나씩 잡지를 소개하는데, 이 소개글은 잡지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잡지 입문서다. 현재 시의적절한 잡지와 그 잡지를 읽으면서 밑줄 친 구절, 그에 대한 주인장의 감상 등을 빼곡히 정성껏 써서 알려주는 이 피드는 내가 종이잡지클럽에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나와 같이 이 퀄리티 높은 큐레이션 피드에 반한 이들이 많은지, 종이잡지클럽은 오픈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400명에 이른다.
그래서 나는 월간 회원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틈날 때마다 이 공간에 와서 가능한 많은 잡지를 열람하고 싶었다. 미세먼지 없는 쾌적한 환경을 위해 공기청정기가 정 중앙에 있는 이곳, 주인장이 달콤한 캐러멜을 가져다주는 이곳, 불편한 건 없는지 계속 물어봐주고 배려해주는 이곳, 게다가 와이파이를 검색해 보니, 'No WiFi, Read Magazine'이라고 적혀 있는 이곳.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런데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월간 회원을 위한 깜짝 놀랄만한 선물이 있었다. 바로 매달 말 주인장이 회원들에게 발송하는 이메일이다. 물론 인스타그램 피드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곳 큐레이션의 압권은 바로 종이잡지클럽 뉴스레터였다.
그 자체로 잡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뉴스레터는 내용이 풍부했다.
- 3월의 기획 '미래'
- '미래'를 이야기하는 3월의 추천 잡지들
- 2월에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잡지들
이 꼭지들은 하나의 가치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에 관한 다양한 잡지의 시각을 확인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었다. 인스타에 올린 것들 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선별된 느낌의 월간 큐레이션이다. 뉴스레터를 보며, 이곳의 멤버십 서비스가 정말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뉴스레터는 다음 달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에 초대하고 있었다.
- 이달의 해외 잡지 Talk
- 잡지 읽기 워크숍
- 회원 운영의 날
회원들을 대상으로 먼저 사전 신청을 받고 수가 모자라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공지를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어 보인다.) 잡지를 읽고 또 함께 얘기하는 시간, 오롯이 잡지만을 가지고도 분석하고 고민하기엔 시간이 모자랄 것만 같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런 자리는 쉽게 알기 힘들 것이다. 회원들은 따로 비용을 낼 필요도 없었다. 시간만 난다면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두 번째 방문한 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 방문해서 잡지를 정독했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또다시 오롯이 잡지를 읽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종이잡지클럽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날은 사람들이 테이블을 꽉 차지하고 있었다.
"아, 오늘은 무슨 모임이 있나 봐요?"
"네, 오늘은 잡지 읽기 워크숍이 있는 날이라서요. 괜찮으시면 이곳에 앉으시겠어요?"
분위기가 사뭇 달라 당황했지만, 주인장은 친절하게 다른 자리를 안내해줬다.
솔직히 그 모임을 신청하진 않았지만 참여해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8시부터 시작한 모임이라 뒤늦게 온 나는 어차피 민폐인데 더욱더 민폐가 될 게 뻔했다. 나는 내 잡지를 읽으면서도 모임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과학잡지 Ep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침 나도 인스타 피드를 보고 Epi를 꺼내 든 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미세먼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종이잡지클럽 주인장은 모임의 구성원이자 사회자였다. 살짝 이야기가 샐 것 같으면 주제를 다시 되돌려놓곤 했다. 하지만 잡지다 보니,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그 짧은 시간에도 '미세먼지'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선물', '책' 등으로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가 오갔던 것 같다. 정말 즐겁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니, 이 느낌, 어디서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무엇일까?
바로 '살롱'이다
왜 이곳이 종이잡지 '클럽'이라 이름 붙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잡지를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잡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기타 이곳 클럽의 운영에 대한 생각까지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장이다. 잡지라는 수많은 콘텐츠를 유랑하는 잡지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게스트하우스'같은 곳이다. 다양한 잡지 기사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얻은 지식과 감상을 토론할 수 있는 그야말로 한 편의 '잡지'같은 곳이다.
요즘 살롱이 대세라는데, 이곳은 그 '살롱'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랄까. 서점들을 탐방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지만 참 멋진 곳을 발견했다는 생각에 스스로 뿌듯하기까지 하다. 4월에는 꼭 구독자 Talk 모임에 참여해서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참, 이곳에서는 잡지를 열람할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잡지를 구매할 수도, 잡지를 구독할 수도 있다. 자기만의 스크랩북을 만들 수도 있고, 외국 잡지를 번역해주는 서비스도 있다. 세심하고 또 세심하다는 생각 밖에. (도대체 이곳 매력의 끝은 어디인가.)
서비스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아래 링크, 종이잡지클럽의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럼, 오늘은 이만.
종이잡지클럽에 저녁마다 출근도장 찍으러 이만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