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걷고 싶어서
지난주,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도 백수는 백수인지라 무료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산에서처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었다.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곳은 바로 한강. 그리하여 그 생각이 든 바로 그날, 충동적으로 한강 다리를 건너게 됐다.
그날은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는 길이었다.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었기에- 한 시간 반 거리는 바쁠 이유 없이 한가롭게 걷기 좋은 시간이었다. 그저 지금껏 한강을 건너리란 생각을 해본 적 없다는 게 신기하단 생각을 하며, 반포대로를 건넜다.
딱히 힘들단 생각 없이 그 뒤로 한강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마포대교를 걸었다. 추억의 장소, 여의도를 가는 길은 가장 긴 산책길이었다. 그때 조금 힘들단 생각을 하며 마포대교를 마지막으로 나는 더 이상 한강을 걸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우연찮게 서울에 계속 머무르게 됐다. 생각보다 걷기는 중독성 있었다. 가능한 평일마다 한강 다리를 건너보기는 게 어떨까? 나를 시험하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아주 살짝 후회했지만) 그래, 도전정신이 있는 내 모습이 진정한 나라며 스스로를 속여보기로 했다. 하하.. 까짓 거.
그렇게 오늘, 오늘이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처음에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종로에서 서초동까지, 3시간 1분이 찍혔다. 지금껏 한강을 건널 때마다 한 시간 반~두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걸었지만... 이렇게 오래 도심을 걸어야 한다는 건 시작부터 어깨와 다리에 힘이 풀리는 일이었다. 겁이 나서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 둘의 상관관계는 아마도 존재하지 않을까.)
내가 출발한 시각은 11시 30분쯤. 정확히 종로 2가 우체국에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청계천에 도착하자 유난히, 유난히 칼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 바람은 동대문, 아니 동묘, 아니 신당동 저기서부터 불어오는 것일 테야.' 괜스레 바람을 탓하며 명동역을 향해 가는데, 따스하게 내려다보는 명동성당이 눈짓을 하는 게 아닌가. 도저히 언 손으로 내비게이션을 켜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쉬어 가자.'
나는 서점에 가면 무한한 안도감을 느낀다. 괜히 서점에 들러 안을 둘러보고 나면, 내가 책 속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독서의 기운을 얻는 달까? 책을 읽기보단, 책을 고르는 재미가 꽤 쏠쏠한 나에게 서점은 좋은 놀이터였다. 명동성당 안에 깔끔하게 꾸민 인터파크 서점은 예나 지금이나-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겨울에 들어오면 이렇게 따뜻한 느낌이다. 그렇게 한 십오 분을 앉아있다가,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일어났다. 서점은 그렇게 나그네에게 쉬어가라 말하는 곳인가 보다.
명동역 앞 횡단보도를 걷는데, 유난히 가녀린 다리를 하고 있는 한 외국인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까만 레깅스에 패딩 차림이었지만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잔뜩 어깨를 웅크리며 신호등 아래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눈빛으로 말했다. '날씨가 미친 것 같아. 욕이 나올까 봐 너도 입을 꼭 다물고 있군.'
여기서부터는 내가 모르는 길. 내비게이션을 켜서 가야만 했다. 장갑을 벗고 내비게이션을 켜는데, 다른 앱을 켰다가 네비 앱을 켜면 자꾸 초기화되는 게 원망스러웠다. 명동역에서 반포대교까지는 남산을 거의 통과해서 지나가야 했다. 아직... 겨우 이십 분을 온 건가.
한강 다리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