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서 편력

짧은 독서경력을 되짚으며, '독서란 무엇인가'

by 별별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그럴 때마다 책 읽으면서 지낸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으면서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종이책을 실컷 읽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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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에게 독서란


어렸을 때부터 참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도 다양한 학문분야를 가리지 않고 (잡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독서를 했다. 늘 도서관을 다녔고 늘 궁금증을 달고 다녔고 그 해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관심 있는 분야, 좋아하는 작가들도 인생의 시기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학창 시절에는 존경했던 한문 선생님의 영향으로 동양고전을 많이 읽었다. 언젠가 사서는 원문으로 읽어보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논술 준비로 플라톤, 루소 등 사상가들의 서양철학 고전이나 세계 고전문학도 고등학생 시절에 가장 많이 읽은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알베르 카뮈, 카프카 등 실존주의 작가들이다. 사춘기에 특히 철학적인 물음을 많이 품었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대학을 올라가서는 법학을 전공하였지만 독서에 있어서는 전공서적 외에 다른 분야에 눈을 돌렸다. 특히 마지막 4학년에는 가 궁금했던 분야를 섭렵해보고자 노력했던, 가장 화려한 독서 편력을 지내온 시기였다.


내가 관심을 가진 키워드는 여성, 환경, 과학. 시험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거의 읽지 못했던 몇 년 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직면하여 여성학 수업을 들으며 페미니즘 도서들을 읽었고, 환경법 수업을 들으며 레이첼 카슨의 저서부터 시작해 「녹색평론」 등을 읽으며 역할을 고민하기도 했다. 또 열역학 교양수업을 들으며 고등학생 시절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어느새 너무 먼 당신이 되어버렸던 물리학을 다시 한번 알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는 가까운 이와 갈등하면서 ‘신은 존재하는가’에 대한 종교적 물음에 매달렸던 시기이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버트런드 러셀, 헤르만 헤세, 리처드 도킨스, 이어령 등 지성인들이 어떤 사유를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꼬리물기 하듯 책을 읽었다. 비록 정답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독서를 함으로써 끊임없이 고민하려는 노력 그 자체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책을 예전만큼 읽지 못하게 되어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위 말하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달고 사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안 되겠다 싶어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격주로 두 권, 문학과 기타 분야 책을 읽는 모임이었는데, 함께 선정한 책들은 주로 그 당시 유행하던 베스트셀러들. 그땐 우리 모두 직장인들이었고 사회생활을 경험하며 고용, 주거 등 한국사회의 문제를 고민하는 책, 선거를 경험하면서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인들의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퇴사 후 봉사를 떠나기 직전 나의 책장

퇴사 후 봉사활동을 하러 먼 해외로 파견되면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독서가 물리적,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때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을 수 없다는 불안한 마음에 전자책 리더기를 사들고 갔지만 생각보다 잘 읽히지 않았고 결국 현지 사무소에서 분기별로 세네 권 빌리는 책들로 연명하곤 했다. 이때에는 내가 파견된 중앙아시아 지역을 많이 알고 싶어서 문화인류학 책을 탐독하였고 봉사라는 행위에 대해 인간의 이타주의를 정의 내리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다.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지금, 요즘 읽은 책을 살펴보면 그간 독서 경향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소설, 에세이를 정말 많이 읽는다. 독서도 환경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지금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그동안 내가 했던 독서는 알기 위한 독서, 즉 ‘문제의 해결’을 위한 독서였다. 학창 시절 학교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느낌에서 탈피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독서는 세상을 최대한 빨리, 효과적으로 간접경험을 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편이었다.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어 책을 읽었지만 책의 역할은 또 다른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사회와 세계를 직접 나와서 경험하게 되면서, 또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서, 책이란 더 이상 나에게 일방적인 지식 전달책이 아니다. 오히려 책이란 함께 고민을 나누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에세이를 읽으며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을 가까이하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 걸 느낀다. 이젠 독서라는 행위가 '대화'를 하는 것 같다고나 해야 할까. 그래서 요즘은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나 홀로 파고드는 독서는 아니지만, 카페에서 여유롭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맥주 한 잔 곁들이며 독서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책을 '많이 읽었다'고 말할 순 없지만 '끊임없이 읽으려고 노력'했다.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최소한 매달 책 몇 권이라도, 이자를 갚는 것처럼 부채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독서는 내가 잊지 않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 무엇이었다.


그리고 요즘, 책을 읽으려고 애 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책을 가까이하게 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의 깊이가 있는 독서를 하는 요즘.


독서를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좀 더 유연하게 바라보면서 내 삶도 여유가 생겼다. 때론 책을 덮고 멍하니 감동을 되새기고, 때론 독서로 울먹이는 감정을 글로 남겨보고... 그렇게 감동은 내 안에 조금씩 물들고 있었다.


앞으로 또, 독서의 역사


사실 독서 편력이라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만 감히 나의 독서력을 찬찬히 반추해보며 '편력'이라고 이름붙였다. 나의 오랜 선생님이자 오랜 친구, 책. 나에게 그 책을 읽는 행위는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었다. 나에게 독서란, 내가 끊임없이 고민한 사유의 흔적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읽을 책은 무궁무진하고 남은 삶도 짧지는 않아 보인다. 앞으로도 책과 함께 살아가기를, 그래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삶이 되기를, 좀 더 감동적인 삶이 되기를, 그렇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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