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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Apr 22. 2019

내게 추천서를 써준 사람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지나가는 말처럼, 한 오빠가 ‘아르바이트 안 해?’라고 물어본 게 계기가 됐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통장에 있는 돈을 까먹기만 하고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내가 정말 대충 살려고 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 대신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그땐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는 게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의미 있다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누굴 도울 거란 생각은 다소 우월감, 이기적인 마음의 발로였던 게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된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 때는 겨우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는데, 사실 돈이 급해서라기보단 친구가 취업을 하게 되면서 떠 앉다시피 한 영어 과외였다.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다는 건 나중에서야 꽤 뼈아픈 부재로 남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제안한 그 오빠는 내게 추천해준 일을 무려 4년 가까이 했다고 말했다. 주말에 할 수 있고 시급도 괜찮고 주어진 몇 가지 일만 정확히 하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건 바로 시험 감독관 아르바이트였다. 평일에는 내 할 일을 하면서 주말에만 바짝 일할 수 있다니, 정말 잘 됐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고생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낭만은 아녔지만 아직까지 조금은 낭만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서 난 아직 멀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르바이트가 외국 기관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는 거다. 면접장에선 고객응대경험, 자신의 신용도 평가를 말해야 했고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업무 매뉴얼 강의도 몇 시간을 들었는데 싸인 할 문서도 산더미였다. 뿐만 아니다. 기타 규정에 관한 온라인 강의도 일주일 동안 들어야 하고, 간단한 시험도 쳐야 한다. 그 온라인 강의는 일 년에 한 번씩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또,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추천서 3장을 받아오셔야 돼요.”


교육 담당직원은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추천서를 세 장이나 써 오라는 건 일반적인 취업의 경우에도 꽤 드문 일 아닌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파트타임 채용 문턱이 높은지, 솔직히 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을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추천서를 받을 것인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에게 이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준 오빠다. 실제로 추천해준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또 누가 있을까. 추천인 예시에 따르면, 이전에 다녔던 직장의 구성원이 나의 업무능력을 평가하고 다음 직장에 추천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했다. 그렇다면 전 직장 사람에서 상사나 선배에게 부탁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전 직장 상사분들 중 몇 분이 떠올랐지만 한 분은 직책이 높은 분에게 아르바이트 추천을 부탁하는 게 왠지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또 다른 분은 그동안 귀국한 뒤로 연락 한 번 드리지 못했는데 이런 부탁을 드리기에 면목이 없었다. 


두 명을 제하고 나자, 갑자기 밑천이 바닥나버린 느낌이었다. 내 인맥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았나, 자괴감이 들었다. 마음을 추스리고, 우선 두 명에게 먼저 추천서를 부탁하기로 했다.       




추천인1     

"오빠, 저를 추천해주셨으니 추천서 한 장만 써주세요."

“내일 해서 보내줘도 될까?”

“당연하죠!”

"추천서 양식이 있음?"

(며칠 뒤)

파일 전송.          

<추천인1의 추천서>

- 다년간의 회사 생활을 거치며 조직 내부에서 원활한 인간관계를 유지함. 더불어 해외 자원봉사를 나가 현지인들과도 친분을 쌓을 정도로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남
- 본인이 맡은 업무에 관해서 책임감이 강하므로 업무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규정 및 보안을 철저히 준수 할 인재
- 업무 지침을 습득하는 능력이 좋고 생산적인 업무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도 선호하기 때문에 돌발변수를 맞이하더라도 차분히 대응할 수 있음
- 사회적 소수의견에 귀 기울이고 다른 것은 포용하려는 이해심을 품고 있음.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려는 편임. 편견 없이 모든 응시자를 대할 수 있는 인재     

     

추천인2     

“선배~ 추천서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 양식이 있나?”

“네 한번 알아볼게요.”

(며칠 뒤)

“언제까지라고 했지?”

(다시 며칠 뒤)

“보냈다.”     

<추천인2의 추천서>

- 늘 경청하는 자세로 상대와 대화하기에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합니다. 
- 2012년부터 4년 동안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출근 시간이나 근무 수칙을 어기는 경우를 본 적이 없고, 이로 인해 문제가 된 적도 없습니다. 
- 상사나 동료의 지시나 조언을 허투루 듣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지시나 조언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 이해를 통해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받아들인 뒤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 대학시절 법학을 전공한 영향 때문인지  법률과 규칙을 지키고 적용하는 리걸 마인드(Legal Mind)가 확립돼 있습니다.     


가끔 웃긴 구절들도 있었다. 


-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습관적으로 그 즉시 무슨 뜻인지 물어봅니다. 이 때문에 오해로 인한 업무상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아... 내가 되묻는 질문을 많이 했군요. 얼마나 귀찮으셨으면 이렇게 말씀하시기까지...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왜요?"였다는 걸 새삼 떠올렸습니다.


-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간결하면서 무례하지 않게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에 능숙합니다.

"무례하지 않게" 내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긴 합니다. 말을 할 때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도모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도덕성하면 저를 따라올 수가 없죠. 저는 쓰레기를 길에 버린 적이 없는 한 번도 없는 사람입니다. 


- 자기 자신을 과대포장하거나 떠벌리지 않기 때문에 보안상의 문제가 발생할 우연한 가능성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기 자신을 떠벌리지 않는다는 건 정말 인정합니다. 그것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오히려 지적을 받곤 하지요. 좀 더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내가 그런 사람이었던가?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 추천인은 서류 제출 마감날까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머리를 쥐어 짜내다시피 고민하다가 부탁한 사람은, 친분이 있었던 어느 기자분이었다. 업무적으로 겹친 적도 없었지만 항상 서로의 일을 응원하는 독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분이었다. 역시나 하지만 너무 급하게 부탁했던 지라... 



추천인 3

"잘 지내시죠? 제가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시간이 여유있으신가요?"

"오세요. 와요와요."

"아, 그게, 다름이 아니라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려는데 추천서가 필요해서요."

"언제까지 써드리면 돼요~?"

"혹시 오늘까지 가능할까요?"

"제가 폰이 doc 읽기만 가능한지라ㅠ"


결국 추천서를 받는 건 힘들었지만 충분히 그 마음은 너무 감사하게 받았다. 기꺼이 추천해주려고 하는 말씀, 귀찮게 생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추천서를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추천서를 부탁하면서, 그동안 내 마음은 참으로 변화무쌍했다. 불안했다가, 행복했다가, 걱정됐다가, 감사하곤 했다. 남들이 평가하는 객관적인 내 모습을 알게 되는 건 참으로 긴장되는 일이다. 그것도 다른 성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이란 측면에서 나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자신이 없었다. 내가 과연 일을 잘 하는 사람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추천서를 받아들고 나는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무엇보다 안도감이 들었던 부분은, 나조차 나를 의심하고 있을 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애초에 걱정했던 것처럼 나는 내가 일을 잘 하는 사람인가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평가하는 나는 꽤 일 잘 하는 사람,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원래부터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서류탈락을 반복하면서 내가 자꾸만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던가 보다.

나는 정말 안 되는 걸까? 

하지만 이런 추천의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확신에 찬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금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도 자신있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추천서는 그 무엇보다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물론 추천서는 공식적인 소개이기 때문에 나의 단점을 말할 리 없다. 하지만 나의 장점을 얘기해주는 것에 있어 이렇게 정성껏 얘기해준 것 그 자체로 정말 고마웠다. 솔직히 말해서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줄 줄은 몰랐는데... 내가 이런 정성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정성을 나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 사람들에게, 정말 잘 하고 싶다. 내가 직접적으로 보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는다. 나를 추천해준 사람들에게 정말로 보답하는 길은 그분들의 말이 진짜라는 걸 몸소 증명하는 길이다. 다시 말해, 그 추천서에 적힌 그대로, 나라는 사람이 정말로 일 잘하는 사람이 라는 걸 보여줘야만 하겠다.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고 "역시, 거봐~ 내가 말한 대로 이 친구 잘 하는 친구잖아."라는 말씀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추천서를 받는 게 처음엔 조금 어색하고 막막했지만, 결과적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긍정적인 다짐을 하게 되었다. 

내게 추천서를 써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런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힘을 내 본다. 추천서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나의 길을 정의해주고 힘을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마음으로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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