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 속의 화초. 어떤 사람들은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한다. 그만큼 어렸을 적에 너무 바르게 자라와서 소위 말하는 '범생이'였던 탓이다. 나는 일탈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을 가서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곤 했다. 조퇴를 하고 노래방에 놀러 가는 친구들, 시험이 끝나자마자 시내에 옷 사러 나가는 친구들을 보며 난 신기하기만 했다. 그 친구들은 아마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겠지. 당시에는 나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으니 나는 내가 '놀지 않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보면 '노는 법'도 좀알았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후회된다. 왜냐면 평생 일탈에 대한 동경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서, 자꾸만 삐져나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뭔가 참을 수 없는 답답한게 있다고느낀다면, 거꾸로 내가 어느 부분에서 꽉 막혀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었다.
나의 금기 첫 번째. 욕하기.
나는 지금까지 욕을 해본 적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십 원짜리 욕(씨-로 시작되는 욕)을 해본 적이 없다. 강아지를 뜻하는 욕(개-로 시작되는 욕)도 해본 적 없고, 성기를 나타내는 욕(ㅈ-으로 시작되는 욕)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이런 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감히 입 밖에 꺼내질 못한다.
친구들이 욕을 하면 나는 옆에서 욕을 하지 말라고 눈치를 주는 타입이었다. 친구들은 잔소리를 많이 한다고 학을 떼면서도 내 눈치를 봤다. 이래저래 오지랖이 넓은 친구 타입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고백
고백하건대 사실 딱 한 번, 어린 시절에 딱 한 번 욕을 해봤다. 몇 살인지도 모르고, 무슨 욕을 했는지도 모른다. 아마 여섯일곱 살쯤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날을 똑똑히 기억한다. 바로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욕이란 걸 해본 날이었다.
부모님은 아파트 정문 앞에 주차를 시켜놓고 잠깐 나가셨다. 그날은 우리 가족이 백화점에 다녀온 날이었다. 나랑 동생 두 명만 뒷좌석에 앉아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찰지게) 욕을 했고 동생은 그걸 (똑똑히) 들었다. 부모님이 오시자, 동생은 그걸 일러바쳤다. 부모님은 매우 화가 나셨는데, 아마도 내가 장난감을 사 주지 않은 부모님을 향해 욕을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집에 오자마자 크게혼을 내셨다. 누구한테 욕을 한 거냐, 그 욕이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거냐, 욕을 하면 안 되는 걸 모르느냐... 머리끝까지 화가 나신 아버진 급기야 맞아야겠다고 하시며 엉덩이를 걷어붙이게 하셨다. 우리 집의 유일한 회초리는 기다란 구둣주걱이었다. 나는 그걸로 엉덩이에 불이 나도록 맞았다. 그날은처음이자마지막으로아버지가나를때린날이기도했다.
어머니는 내 엉덩이에 연고를 발라주시면서 울음을 뚝 그치라고 다그치셨다. 원래 울지 말라고 하면 더 우는데... 엉엉 삐져나오는 울음을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 엉덩이 바지를 올려주시면서 싸늘한눈초리는나를계속따라왔다엉덩이의뜨거운기운과어머니의차디찬눈빛은아직도생생하게기억난다.
그때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다시는 욕을 하지 말아야겠다.욕은하면 절대 안 되는 거구나.
망할.
그 뒤로도 나는 욕을 해본 적이 없지만 가끔씩 정말 욕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내가 제일 심하게 할 수 있는 욕은 "망할"이란 욕이다. 또는 "짜증 나"라는 말도 가끔씩 한다. 하지만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담아 짜증 난다고 말하면 사실 그것조차도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