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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공감

'촉법소년'들의 '설 선물 테러' 사건을 보며...

일상 공감_사회생활

by ALONE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설 선물 택배 테러’가 발생했다는 기사(중앙일보 2월 6일 자)를 봤다. 누군가 식용유, 밀가루, 로션, 건강보조제, 과일 등이 든 택배를 뜯은 후 내용물을 꺼내 던지고 짓밟아서 아파트 일대를 온통 아수라장을 만들어 놨다고 한다. 몇몇 세대는 현관문 도어록에 로션을 칠해놓는 바람에 고장이 나기도 했고, 식용유가 뿌려진 복도에서 미끄러져 넘어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상상만으로도 기가 차고 화가 난다. 그런데 CCTV로 찾아낸 범인은 놀랍게도 세 명의 초등학생이었다고 한다. 그 기사에는 ‘화나요’가 3천 개가 넘게 붙었고 비난하는 댓글이 1천 개가 넘게 달렸다. 범인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아동이라서 그 부모들이 피해를 보상하기로 했다는 데서 기사는 끝이 났다. 기사를 보면서 오래전에 내가 겪은 어떤 일이 떠올랐다.


15년 전의 일이다. 그날 무슨 일로 외출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옷을 잘 차려입고 딸과 함께 어딘가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아파트 옥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는 순간 어디선가 컵라면 통이 날아와서 내 바로 옆에 떨어졌고, 라면 국물과 건더기가 구두와 옷 그리고 얼굴까지 다 튀었다. 라면 국물이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눈이 매워서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아파트 위를 올려다보니 고층 복도 난간에 눈만 빼꼼 내밀고 아래를 보던 남자아이 2명이 낄낄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딸은 내가 지르는 비명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 것 말고는 괜찮았다. 나는 딸이 다쳤을까 봐 아주 잠깐이었지만 말할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몇 층인지 눈대중으로 세어보고 올라갔지만 현관문을 닫고 숨어버려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라면 국물을 뒤집어쓴 채로 아이들을 찾아 헤매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편의점 아주머니에게서 뜻밖의 단서를 얻었다. 하교 후에 늘 컵라면을 사가는 단골 초등학생이 있는데 그날도 친구랑 둘이서 한 시간 전쯤 다녀 갔다는 것이다. 늘 사 가지고 간다는 컵라면의 브랜드가 아까 내가 뒤집어쓴 것과 같았다. 간식을 사러 하루에도 몇 번씩 편의점을 드나드니 좀 기다려보라는 것이었다.


심증은 갔지만 그것만으로 그 아이가 범인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고, 마냥 기다릴 수도 없어서 돌아 나오려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이 벌어졌다. 편의점 입구를 들어서던 그 녀석이 나를 보더니 뒷걸음질로 도망을 쳤다. 그 아이 얼굴을 제대로 본 게 아니라서 정면으로 마주쳤더라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도둑이 제 발 저려 도망을 가는 걸 보니 저 애가 맞는구나 싶었다. 내가 백 미터 달리기가 24초라서 애를 또 놓칠 뻔했는데 마침 지나가던 경비원이 아이를 잡아 세웠다. 형사가 탐문 수사로 범인을 특정하고 검거에 성공했을 때 마음이 그때의 나와 같지 않았을까.


나는 범인을 잡은 경찰처럼 의기양양해서 컵라면을 던질 때 같이 있던 친구를 부르게 해서 둘을 세워놓고 혼을 냈다.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들어서 우리를 에워싸고 한 마디씩 거드니까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초등학교 5학년이라는 그 아이는 전에도 요구르트 병, 우유팩 등을 주차된 차와 길 가던 사람들에게 던져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에는 그런 일들이 귀찮은 청소 거리를 만들고, 행인에게 불쾌감을 준다는 차원에서만 문제를 삼았지 지금처럼 아파트 고층에서 떨어진 물건이 흉기로 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고층에서 물건을 던지면 위험하다는 경고문을 붙이라고 아파트 관리실에 요구했지만 아이들이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답이 되돌아온 걸 보면 말이다.


그 아이에게는 부모님이 오시면 오늘 네가 한 일을 꼭 말씀드리라고 하고 내 전화번호를 적어줘서 돌려보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난 뒤에야 아이가 눈물 흘리던 모습을 떠올리니 내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불러서 타일렀어야 했는데 솔직히 너무 화가 나서 앞뒤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 아이의 부모에게 연락이 오면 아이를 꾸짖은 것에 대해 사과를 할 생각이었다. 그쪽에서 사과를 하고, 나도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훈훈한 마무리를 상상했었다. 그게 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나 혼자만의 상상이었다. 저녁에 그 아이의 부모가 찾아와서 문을 열고 나갔더니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덤벼들면서 험악한 말을 퍼부어 댔다. 아이가 장난 좀 친 걸 가지고,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망신 주고 기를 꺾었다며 도리어 나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괘씸죄로 세탁비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렇게 어리바리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때는 입도 떼어보지 못하고 KO패를 당했다. 이웃들이 말려서 어찌어찌 상황은 정리됐지만 지금 되짚어 봐도 여전히 어이가 없고 불쾌한 기억이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 공교롭게도 옆 단지에서 한 중학생이 장난으로 던진 캔 음료에 머리를 맞은 50대 가장이 숨지는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다. 그제야 관리실에서는 여기저기 경고문을 붙이고, 방송을 하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그 아이의 부모가 그 뉴스를 보고 아이가 던진 게 캔 음료가 아니라 먹다 남긴 컵라면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나는 세탁비를 물어달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아마 그 부모는 아이가 한 잘못이 세탁비 정도로 갚으면 될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누군가의 기분 좋은 하루가 날아갔고, 주차를 할 때마다 머리 위로 뭔가 떨어지는 게 아닐까 무의식 중에 가슴 졸이게 된 남의 사정에 대해서까지 아이가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일은 아니라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은 20대의 청년이 돼있을 그에게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한 부모의 역성들기가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하다.


‘설 선물 택배 테러’ 기사에 붙은 댓글을 살펴보니, 아동·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성토의 목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번에 테러를 저지른 학생 3명 중에는 만 10세 미만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0살이면 남의 물건과 자기 물건을 구분할 줄 알고, 어떤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을 나이지만 현행법상 만 10세 미만은 '범법 소년'에 해당해 그 어떤 범행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한다. 만 10세~14세 미만의 '촉법소년'은 형사처분 대신 보호처분만받는다.


근래 들어 아동·청소년이 저질렀다고 보기 힘들 만큼 잔혹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나도 평소 ‘촉법소년’의 연령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잘못으로 전과자라는 낙인을 새기고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진정으로 반성하는 마음과 교화의 가능성이 있다면 잘못을 만회하고 바르게 살아갈 기회를 주는 편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번 테러를 저지른 아이들의 부모가 피해 보상 외에 어떤 후속 조치를 취할지 무척 궁금하다. 금전적인 피해를 보상하는 것으로 아이들이 저지른 잘못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은 부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정의가 남아 있다고 믿는 우리 사회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엄연히 구분돼있다. 도덕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결코 돈으로 갚을 수 없는 법이다. 이번 일로 아이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부모가 막아서는 일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귀하디 귀한 자식을 남들의 손가락질로부터 지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무엇인지 답을 알고 있을 거라 믿는다. 뒤이어 훈훈한 후속 기사가 올라오길 기다려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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