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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 공감

<82년생 김지영>에게

일상 공감_책과 나

by ALONE

※편지글 형태로 쓴 독후 감상문입니다. 아래 글에 담긴 에피소드는 여러 가지 사례를 조합해서 꾸민 가상의 사례임을 밝힙니다.



지영 씨에게


이렇게 불쑥 편지를 보내는 걸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오래 망설였어요. 시간이 더 지나면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 두었던 이야기들이 기억 저편으로 건너가 버릴 것 같아서 더 미루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설 연휴 첫날이에요. 설날 덕담이 오가는 단체 카톡방마다 시댁행을 앞둔 며느리들의 한숨소리가 깊습니다. 이미 며칠 전부터 남쪽 어딘가에 있는 시댁에 가 있다는 지인의 하소연에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새어 나오기도 했답니다. 연휴 기간 동안 다른 지역에 사는 가족을 방문하지 말라고 정부가 강력하게 말을 했는데도 명절을 포기할 수 없는 분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명절이 끝나고 코로나 19 대유행이 다시 오면 어쩌나 걱정입니다.


참, 저는 70년생 김지영이라고 해요. 한탄을 늘어놓느라고 제 소개가 너무 늦었네요. 당신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몇 번이나 읽는 것을 멈췄다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읽어 내려가곤 했어요. 제가 살아온 것과 당신의 삶이 너무 비슷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죠. 성장 과정과 직장 생활 중에 겪은 일도 판박이처럼 똑같더군요. 몇몇 구절은 아예 제가 시댁에서 들었던 얘기와 토씨조차 다르지 않았어요. 하필 이름까지 저와 같아서 기시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혹시 내가 시댁에 대해 푸념하는 소리를 엿듣고 쓴 건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우리의 나이 차가 열두 살이나 나는데 그럴 리는 없겠죠. 어쨌거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2년이 지나도 이 땅의 딸들과 며느리들의 삶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네요.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얘, 너 힘들었니?”


사실 저희 시댁은 그렇게 시집살이가 까다로운 편은 아니에요. 시부모님도 온화하신 편이고요. 하지만 명절을 치르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나 단호하셨죠. 명절이면 으레 며칠씩 시댁에서 지내는 걸 당연하게 여기셨어요. 남편은 서울에 거주하는 고향 친구들을 고향에서 또 만나느라고 바빠서 명절날 아침 밥상에서가 아니면 얼굴을 보기 힘들었죠. 시어머니는 저녁에 남편이 나갈 때면 문 앞까지 배웅을 나가셔서 실컷 놀고 오라고 등까지 다독여주시곤 했어요. 하루 종일 각종 전을 부치느라 기름통에 빠진 생쥐꼴이 된 저는 놀러 나가는 남편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명절 낮에는 숙취 때문에 주로 취침 상태인 남편이 잠시 물이라도 마시러 나올라치면 ‘쟤 필요한 것부터 챙겨주라’는 시어머니의 재촉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시댁에서 길게는 3박 4일, 짧게는 2박 3일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왠지 모를 억울함에 가슴이 답답했어요.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저희 시누이 가족도 자기네 집 제사를 마치고 나면 꼭 점심을 먹으러 왔어요. 저는 시누이 가족이 점심 식사를 다 한 후에야 친정으로 갈 수 있었죠. 당신이 겪은 상황과 너무 똑같죠? 책을 읽으면서 저도 놀랐어요. 그런데 우리만 그런 건 아닌가 보더라고요. 나중에 지인들과 명절 뒷이야기를 나눠보면 다 비슷하더군요. 아무튼 원래 시댁에서 저희 집까지는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시누이네 점심상을 물리고 출발하면 성묘 차량들과 겹치면서 너 다섯 시간은 족히 넘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죠.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연휴 내내 쌓였던 스트레스가 폭발하고, 몸을 피할 데도 없는 좁은 차 안에서 남편과 저는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서로를 헐뜯고 비난했어요.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니 명절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두통에 시달리게 됐죠.


“그 집만 가족인가요? 저희도 가족이에요. 그 댁 따님이 집에 오면, 저희 딸은 저희 집으로 보내주셔야죠.”


제가 그동안 겪은 일을 글로 쭉 써놓고 보니 참 힘든 시간을 지나왔구나 싶어 감회가 새롭네요. 하지만 시어머니는 평범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서 일부러 저를 힘들게 하려고 그러신 건 절대 아닐 거예요. 아니, 명절이 왜 힘들고 괴로운지에 대한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솔직히 저도 이런 일들이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한편으로는 시어머니도 또 다른 김지영이었을 테니까요. 그냥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살아오셔서 다른 방법은 없다고 믿으셨을 것 같아요. 어쩌면 명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그리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서,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라서 더 바꾸기 힘든 건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쓰는 내내 김지영 씨가 너무 답답하고 안쓰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랐고, 그렇게 살았고, 달리 방법이 없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_‘작가의 말’ 중에서


당신이 차마 꺼내지 못하고 깊숙이 담아두었던 말들이 다른 사람의 입을 빌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세상은 한바탕 난리법석이 났었죠. 이제는 정말로 세상이 달라지는가 보다 했어요. 하지만 저와 지영 씨 사이에 놓인 12년이라는 세월 동안에도 꿈쩍 하지 않고 버티던 일이 한 권의 책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리는 없는 거겠죠.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딸들이 또다시 02년생 김지영, 03년생 김지영으로 살아가도록 놔둬서는 안 되니까요. 시어머니이면서 동시에 친정 엄마로 살고 있는 많은 어머니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어요. 그 힘을 현명하게 발휘한다면 세상은 틀림없이 변화될 거라고 믿어요. 만일 큰 고민 없이 관습을 뒤따르며 산다면 아마 100년이 흘려도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고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_‘작가의 말’ 중에서


저는 몇 해 전부터 명절 당일에만 시댁에 다녀옵니다. 남편이 친구들과 술 약속이 잡히면 하루 먼저 가고, 저는 집에서 음식 몇 가지를 만들어서 따로 갔다가 반나절 정도 머물다 돌아오죠. 남편하고 의논해서 결정한 것이지만 지금도 시부모님은 서운해하시는 눈치가 역력해요.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차마 다 밝힐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명절 연휴가 그리 싫지 않습니다.


지영 씨, 요즘도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말과 행동이 불쑥 당신을 찾아오나요? 제일 먼저 물어봤어야 할 안부를 이제야 물어서 미안합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들었는데 증상이 호전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외람되지만 제 생각에는 정신과 상담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딸 지원이가 살게 되는 그 날, 씻은 듯이 증상이 사라질 거라 생각합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줘서 고맙습니다. 어느 길목에선가 당신과 우연히 마주칠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아요.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딸들이 함께 아름다운 연대를 맺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1년 2월 11일

70년생 지영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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