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19년 8월 / 등급: 15세 관람가 / 장르: 공포, 미스터리 / 러닝타임: 86분
감독: 김진원 출연: 서예지(박미정 역), 진선규(김재현 역) 등
**줄거리
공포 영화를 준비 중인 신인 감독 미정은 시나리오가 잘 써지지 않아 고민이다. 그러던 중 후배로부터 도를 넘는 공포감으로 상영이 금지된 한 공포 영화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10년쯤 그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 공포를 이기지 못한 관객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극장에서 도망치고,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도 나왔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공포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미정은 수소문 끝에 그 영화를 만든 감독 재현을 만나게 된다. 폐인처럼 살고 있던 그는 미정에게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미정은 그의 경고를 무시한 채 영화의 실체에 한발 한발 다가서고, 영화의 원본 테이프를 입수한 후부터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김재현 역의 진선규 배우
박미정 역의 서예지 배우
공포는 어디에?
쓸데없이 까칠한 영화 취향 때문에 끝까지 못 보는 영화도 더러 있는데 이 영화는 그래도 완주하긴 했다. 마지막 20분 정도는 넷플릭스에서 제공하는 스피드 업 기능을 사용해 최대 배속으로 감상을 마쳤다. 상영이 금지된 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영화 <암전>의 실체를 쫓는 중반부까지는 공포 영화다운 긴장감이 어느 정도 유지됐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의 실체가 드러날수록 영화를 만든 재현이 날린 살벌한 경고, 죽음보다 끔찍한 인생 살기 싫으면 그 영화는 잊으라는 말이 무색해지며 흥미가 급감했다. 대단한 비밀에 휩싸인 것 같았지만 다 까고 보니 별 것 아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의 조합일 뿐이었다.
재현이 영화를 찍은 후 경험한 ‘죽음보다 끔찍한 인생’이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아 이야기의 설득력이 더 떨어졌던 것 같다. 재현이 사는 집 벽을 가득 채운 귀신의 모습을 담은 그림, 주렁주렁 매달린 십자가, 붉은빛이 나는 촛불 등으로 괴기스러운 분위기만 보여줄 뿐 구체적으로 귀신이 재현에게 어떤 해코지를 하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긴 어떤 상황을 제시했더라도 산발한 사다코 귀신이 관절을 꺾으며 TV 화면에서 기어 나오는 <링>보다 더 무서울 순 없었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사다코의 <링> 이후로 그런 류의 공포 영화를 안 보게 된 것 같다. 느무 무서워...
미정은 큰 영화 계약 건을 앞두고 시나리오가 안 써져서 초조하던 중 재현이 찍었다는 공포 영화 얘기를 듣고 실체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사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극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온라인상에 재현의 저작물과 정보를 마음대로 올리고, 본인이 삭제해달라고 하는데도 그걸로 딜을 하려고 한다. 내릴 테니 영화 달라고. 재현이 거절하자 그 뒤를 몰래 쫓아 재현의 집을 알아내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무단침입 후 영화 원본 테이프를 훔치기까지 한다.
미정이 그 영화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불분명하다. 단지 공포 영화의 영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용하려고 그러는 것 같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무엇보다 재현과 미정의 공통점도 뜬금없었다. 왕따를 당한 소외감을 공포 영화로 극복하려 한다는 점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영화 <엑소시스트>를 보는 순간 고통이 사라졌다고? 도대체 왜?
영화의 제목 <암전>은 영화 속에서 재현이 만들고, 미정이 실체를 쫓는 바로 그 공포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여배우가 극장에서 목매다는 신을 촬영하던 중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모두 도망을 치는 바람에 극장에서 죽는다. 재현은 불에 타 폐허가 된 극장에서 공포 영화를 찍기로 하는데 그 여배우 귀신이 나타나서 3명의 스텝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끔찍한 살해 장면은 현장에 설치된 카메라와 재현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히고, 재현은 그 영상을 <암전>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에서 상영한 것이다.
영화는 미정이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끝나는데, 미정의 손목에 칼로 그은 자해 자국이 남아 있지 않다. 원래 미정은 손목을 그은 여러 개의 자국을 감추려 두꺼운 가죽 팔찌를 착용하고 다녔다. 아마도 여배우 귀신 순미가 미정의 몸을 차지한 게 아닌가 하는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김동인의 소설을 떠올렸다. 김동인 하면 보통 <감자> <배따라기> <발가락이 닮았다>가 먼저 떠오르지만 예술적 아름다움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탐미주의 사상을 구현한 소설로도 유명하다. 탐미주의를 표방한 김동인의 소설 <광염 소나타>와 <광화사>에는 예술 혼을 일깨우기 위해 방화나 살인도 서슴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 <암전>의 두 주인공을 위 소설에 등장하는 것 같은 탐미주의자로 설정했더라면 오히려 스토리의 개연성도 높이고, 공포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봤다.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본 영화 TOP 8에 올라있어서다. 사람들이 많이 봤다고 해서 항상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왜 자꾸 잊는 걸까.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아 감상을 중도 포기한 두 개의 영화,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이 3위,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5위였으니 8위면 대충 눈치를 챘어야 했나 싶다. 주연 배우에 서예지와 진선규의 이름이 올라 있어서 보게 된 것도 컸다.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력이 낭비된 영화 역시 무수하게 많고, 이 영화도 그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