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시작되는 순간
사람의 마음속에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어떤 기억들은
오래된 와인의 침전물처럼
조용히 바닥에 머물러 있다.
잔을 흔들면
그 감정들은 다시 떠오르고
때로는 마음 전체를 흐리게 만든다.
젊은 시절에는
그 탁함이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은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된다.
그 삶은
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을까.
이러한 감정들은
대개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관계 속에서
더 깊게 남아 있기도 한다.
특히 사람을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음속의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을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삶으로
조용히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그때 비로소
어떤 감정들이
서서히 다른 빛을 띠기 시작한다.
마치 젊은 와인의 거친 탄닌이
세월을 지나며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처럼.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지만
어떤 감정의 결을
천천히 다르게 만든다.
그래서 용서라는 것은
누군가의 잘못을 지워 주는 일이기보다
그 삶의 시간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분노와 짜증은
아직 알지 못했던 시간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마음속에 있던 탁함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 잔 속에
다시 맑은 향이 돌아오듯이.
어쩌면
용서는
사랑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가장 조용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
샤토 브란-캉트냑 2013, 마고
(Château Brane-Cantenac 2013, Margaux)
세월을 지나며 탄닌이 서서히 부드러워지는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