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아닌, 나의 ‘판단’이다.
퇴직 후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나의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받기도 한다. 혼자 밖을 돌아다닐 때와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때는 또 다른 것이 보인다.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는 세상과 맺는 관계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무대에 서는 일과 연구를 함께하는 다재다능한 친구를 만나고, 둘 다 책을 좋아해서 땡스북스에 방문하였다.
분노를 피하기 위해 감정적으로 건조한 책을 찾고 있었다.
땡스북스의 노랗고 작은 메모지로 된 추천사를 읽고 있노라면 책 보다 추천사를 따라서 읽게 된다. 서적의 주제와 톤 별로 공간을 구성하였지만, 그 경계가 분명하기보다는 흐릿하여 한 섹터와 다른 섹터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형태를 지양하는 듯하다. 환경, 이주, 여성, 노동, 음악, 시각예술, 이달의 추천서를 지나 굿즈 코너까지 살피다가 문득 철학 잡지인 뉴필로소퍼에 이르렀다. 뉴필로소퍼는 실생활 밀착형 철학을 안내해 주는 계간지로, 작년도에는 ‘좋은 삶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1), ‘내가 한 선택이 내가 된다’(2) 등의 주제로 내 결정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에는 감정에 대한 내용으로, ’ 감정적‘이라는 것과 ’ 감정‘에 대한 분리와, 스토아학파에서 감정을 어떻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소위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분노에 사로잡힌 내가 감정을 회피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잡지를 집어 들었다.
감정의 표현법은 보편적이면서도 고유하다.
이번 호에서는 기욤 뒤센의 근육 섬유를 통해 인간의 감정을 추적하고 측정하고자 했던 실험을 조명하며, 철학자(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와 에픽테토스)의 감정과 신체 변화에 대한 고민을 작성한 기고문에 눈이 갔다. 간단히 말하자면, 뒤센의 실험은 감정의 표현(근육의 움직임)의 근원을 찾기 위해 외부 자극으로 유사한 형태를 만들었는데, ‘표현’이 ‘감정’의 의미를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정 표현이 한 인물이 가진 세상에 대한 인식, 기억, 명예 등에 대한 판단과 이어져있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표현이 개인의 ‘고유성’과 맞닿아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든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겠지만, 나이, 문화적 차이, 혼자 혹은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때와 여러 사람 앞에 있을 때 표현하는 방법은 다르다.
마주할 때 비로소 잦아든다.
분노에 사로잡혀 마음고생을 했던 내게는 에픽테토스의 “대화록(3)”을 인용한 글이 큰 위안을 주었다: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특정한 대상이 아닌, 자신의 판단이다. 누군가 당신을 비난할 때 상처받는 이유는 그의 말이 아닌 그 말이 나쁜 말이라는 본인의 인식이며, 우리의 감정은 외부의 사건이 아닌 내면의 해석으로 형성된다. 감정의 자유는 회피하고 지우고자 하는 행동이 아닌, 나의 인식을 바라보는데에서 출발할 것이다. 해당 글을 기고한 작가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할 때 우리의 정념은 질서를 잃는다.”라고 표현한 것처럼.
나는 배신에 치를 떨고 다시는 사람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내게 보냈던 모든 증거를 모아서 그 사람의 행보를 방해할 계획을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가장 보편적인 행동이리라 생각이 되지만, 화났다고 모두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신, 나는 내 고유성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그에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바른 길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빌어주는 메일을 보냈다. 이것으로, 그리고 뉴필로소퍼를 읽으며 내 분노로 연소된 상처라는 까만 재를 마음속에서 털어냈다. 이것으로 우리 사이의 모든 업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1)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 vol.28: 좋은 삶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바다출판사, 2024.3.
(2) 뉴필로소퍼 편집부, 『뉴필로소퍼 vol.30: 내가 한 선택이 내가 된다』, 바다출판사, 2025.4.
(3) 뉴필로소퍼 편집부, 「감정을 해부하려 했던 의사 기욤 뒤센의 표정 근육 자극 실험」, 『뉴필로소퍼 vol.33: 감정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다』, 바다출판사, 2026.1, 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