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반추하기보다 바라보다 (완료)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by 언진
이 노승이 아직 참선을 배우기 전에는 산을 보면 산이었고 물을 보면 물이었다.
그러나 선의 이치를 깨닫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었다.
지금 다시 돌아보니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다.


이 구절은 송나라 선승 청원유신이 전한 말로, 단순한 인식에서 수행을 거쳐, 세계를 평정하게 바라보는 깨달음의 단계를 비유한다. 우리에게는 성철 스님의 법문집인 『백일법문』을 통해 소개되었다. “산은 여전히 산이고 물은 여전히 물이다”는 분별과 집착을 넘어선 뒤 다시 일상 세계로 돌아오는 선 수행의 과정으로 설명되는 문장이다.


나의 평온함을 깬 퇴직 이후에 몇 가지 사건들도, 그간 ‘내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눌려온 마음도, 모두 내게 달린 것일 수도 있다는 것. 단순하게 주어진 일을 '나'의 입장으로 보았을 때 억울하고 답답한 일이었지만, 사실은 2026년도의 사회인으로서 겪는 당연한 일수도 있다는 것. 선의 이치를 깨우치기에는 나는 깨달음과는 먼 한낱 중생이지만 이번엔 수렁텅이 같은 과거에서 ‘되돌릴 수 있다면’이라는 썩은 동아줄을 잡으려 노력하기보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기로 한다.


첫째로, 결국 내가 오랫동안 하던 것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일이 아니다. 물론 나와 갑 사이에는 계약이 체결되어 있고, 이에 따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일이다. 하지만 상업적인 목적으로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야 하는 자본주의적 가치와는 먼 일이다. 내가 ‘선택한’ 이 일은 조금 느리게 일하되 폭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작업의 연속이다. 오히려 느리게 하기를 원하는 책임자의 의지에 따라 비효율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속도감과 자극은 떨어져서 (구)워커홀릭인 내게는 자극이 덜하지만 많은 것을 보는 시야를 배우고 있다. 너무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번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둘째로, 가난하고 건강해졌다.

처음 계약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았을 때 눈을 의심했지만, 생존법을 배우고 있다. 조금 덜 소비적인 삶을 추구하여 옷과 잡다한 액세서리는 구매하지 않는다. 점심은 도시락을 만들어 간다. 이왕 가난해진 겸에, 조금만 건강한 것을 섭취해서 뒷구리 살이 껴서 못 입는 옷들을 입어보고자 한다. 건강히 식사하고 깊은 수면을 하니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고 싶어도 회복되고 있다. 그리고 파킹계좌에 있는 여분의 대출금을 이곳저곳 투자해서 조금 더 저돌적인 투자를 감행해 본다. 물론 여러 가지 악재로 인해 수익률은 좋지 않지만, 정신건강에 큰 손해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숫자는 숫자고, 나는 나다. 그리고 나는 몹시 건강한 것을 느끼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멀리서 관찰한다.

물론 이 생활이 완벽할 리는 없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자부하지만 나를 기준으로 ‘나’ 스스로와, 타인, 재화, 불확실한 이 미래와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부단히 노력하기도 한다. 이제 나를 닦달하는 것을 넘어, 타인을 관찰하고 나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얻었다. 조금 더 남들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고 그의 시선으로 행동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삶도, 당신의 삶도 소설책처럼 볼 수 있는 이상한 재주가 생긴 것이다.


소가 여물을 씹고 되새김질하듯이 기억을 꺼내던 나는, ‘주인공’이던 소설에서 나와 독자가 되었다. 과거의 자질구레한 일과 현재의 사소하지만 불편한 일은 그저 예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불편함은 불편함이고, 화는 화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이제는 진짜 내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