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그리고 지금은 학원의 원장이자 교육브랜드의 연구소장이다.
문득 궁금해서 이번 달 상담한 학생 숫자를 세어봤더니 1시간 넘게 상담을 진행한 학생만 100명이 넘는다. 이런 생활을 해온 지 3년 정도는 된 듯하니, 어림잡아도 3천 명은 넘게 만났을 듯하다. 주제는 대부분 '학습'과 '대입'이다.
전문성을 함양한 상태에서, 특정한 목적을 갖고, 수천 명의 학생을 만나보니 학생을 만나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내가 상담할 주제에 대한 학생의 윤곽이 보인다. 내가 상담할 주제란 학습과 대입이니, 대략 어느 정도 역량을 가지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해서, 지금 어느 정도의 성취를 하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화를 하면서 느껴지는 학생의 분위기와 같은 '감'의 영역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데이터에 근거한 추측이다.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니 기본적으로 거짓말에 대한 분별은 잘 되고, 진실만 골라내 보면 학습하는 시간과 방식,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것까지 파악이 되고 나면 대략적인 학생의 역량이 어떤지도 알 수 있다.
공부는 분명히 타고나는 부분이 많다. 교육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들이 가장 많이 주장하는 수치는 50%이다. 물론 이 50%가 학습 시간 대비 효율인지, 장기기억인지, 지능 점수인지는 매우 이견이 많고도 모호하고, 그 타고난 부분이 성적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우 높은 수치임은 명확하다.
어떤 학생은 만나보면 학생 자체는 공부에 재능은 없는 거 같은데 부모님의 꾸준한 케어 혹은 개인의 엄청난 노력으로 일정 수준에 이른 학생도 있는 반면, 재능은 너무 훌륭한데 지원이 부족했거나, 개인적인 성정으로 공부를 잘하지 않아 성적이 미진한 학생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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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은 매우 높은 확률로 대학에 대한 기댓값이 매우 낮다. 자퇴할 사유가 발생하지 않아서 고등학교에 다녔으면 2 레벨 정도(건동홍 > 서성한, 국숭세단 > 중경외시)는 기댓값이 높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대학은 '기댓값보다 높은 학교'에 진학하는 사례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개인적인 기댓값은 실제 진학 실적 미비로 이어진다.
나는 좀 안타깝다. 역량이 되는 한도 안이라면 가장 좋은 대학을 가는 게 그 학생으로나, 국가 전반적으로나 더 의미 있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개인적인 생각을 차치하고도 대부분의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은 가급적이면 더 좋은 대학을 가고자 하는 욕심이 있기도 하다.
내가 자퇴를 하고 자퇴생의 삶을 살아보고, 또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다양한 청소년을 상담하며 인지한 사례를 기반으로 대학 목표가 낮아지는 사유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에 더해 사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학교 밖 청소년이 자신의 가능성을 최대한 펼칠 수 있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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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자퇴 후 공백기를 가지는(생기는) 것
자퇴를 하면 공백기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학업형일지라도 자퇴 직후부터 학업에 매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적으로 자퇴의 사유가 개인에게는 매우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에 공백기를 가지려고 한다. 물론 공백기를 가지는 것은 자신을 가다듬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 공백기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면 안 된다. 자퇴 이후 그저 늘어지려고 하지 말고,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한지 점검하고, 휴식이 언제까지 어떻게 필요한지 꾸준히 생각해야 한다.
휴식이 너무 길어지면 어느 순간 나태가 된다. 처음에는 정말로 휴식의 기간이 필요해 보이는 청소년도, 한 1년 뒤에 만나보면 자퇴의 사유에 대한 괴로움은 전혀 남아있지 않지만 그저 나태함으로 다른 것을 더 시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조금 개인심리학적인 관점일 수 있지만, 사실 자퇴에서 경험한 괴롬움은 다 해소되었는데, 더 많은 시간을 쉬고 싶어서 이미 희석된 괴로움을 핑계 삼거나,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힘들어하려는 모습을 볼 때도 있었다.
휴식이 너무 길어지면 당연히 공부를 다시 하기 힘들게 되고, 자연스럽게 대학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다시 열정을 갖고 시작할 정도의 준비가 갖춰졌을 때, 과감하게 나의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를 권한다.
두 번째, 검정고시가 '관문'이 아닌 '종착점'이 되는 것.
이건 개인에 따라서 조금 다른 문제이다. 자퇴를 하면 대학을 가는 방법이 크게 2가지로 갈린다. 첫 번째는 검정고시 점수를 내신 점수로 환산해서 대학에 수시로 지원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수능을 봐서 대학에 지원하는 방법이다.
수능 3등급 이하의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검정고시 점수로 지원하는 것이 훨씬 쉽다. 수능 4등급 정도의 대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검정고시 평균 95점 정도면 넉넉할 텐데, 검정고시 95점은 수능 5등급보다 쉽다.
반면에 수능 3등급 이상의 대학에 지원하는 것은 검정고시 점수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인서울'이라고 하거나, '경북대/부산대'와 같은 지방 명문대학은 대부분 3등급 이상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3등급 이상의 대학이 목표였던 학생이라면, 그리고 그 정도의 성과가 있던 학생이라면 바로 수능 준비를 하길 권한다. 수능을 착실하게 준비하다 보면 검정고시는 자연스럽게 취득 가능하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수시'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당장에 너무 수능 공부와 같은 빡빡한 공부는 하기가 싫어서 우선 검정고시를 열심히 공부해 보자는 목표를 설정하는 청소년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검정고시 공부는 정말로 수능 공부에는 도움이 거의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쉽다. 그렇기 때문에 검정고시를 거의 만점에 가깝게 받더라도, 수능을 공부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검정고시 만점자라고 해도, 수능은 새롭게 공부해야 한다.
처음에는 인서울이 목표였지만, 검정고시 수시에서 거의 만점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근데 수능 공부는 검정고시 공부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 이런 상황을 당면하면 대부분의 청소년은 새롭게 수능 공부를 하지 않고, 대학을 낮추서 검정고시 성적을 활용해서 대학에 간다. 근데 개인적인 컨설팅 경험에 비춰보면, 처음부터 검정고시가 아니라 수능 공부를 목표로 했다면 공부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는 더 많이 썼겠지만, 인서울 대학에 합격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친구들이 많다.
내 목표가 3등급 이상의 대학이라면 검정고시를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신경 쓴다고 해도 '거쳐가는 곳'정도로 꼭 인식하길 권한다.
세 번째, 나 혹은 주변에 의한 자존감
자퇴를 하고 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에서 자퇴 혹은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프레임이 아직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공부는 자신과의 싸움이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한 마디로 '엄청 고생'이란 거다. 누구나 엄청 고생을 마다하지 않기 위해서는 엄청난 동기가 필요하다. 엄청난 고생을 견디면 엄청난 돈이 들어온다거나, 엄청난 고생을 견디면 엄청난 명예가 주어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대입의 측면에서 본다면 공부라는 엄청난 고생을 해서 엄청난 좋은 대학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야 공부가 된다. 하지만 자존감이 떨어진 청소년이 학습 분야에서 본인에 대한 엄청난 기대를 하기란 어렵다. 엄청난 기대가 안 된다는 것은, 엄청난 공부를 할 배경이 안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이건 스스로가 하긴 힘들다. 주변인이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과거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나아가 더 높은 자존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아마 단순히 공부를 하라고 하는 것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공부를 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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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글 자체가 다소 냉소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자퇴를 하고 나서 충분히 힘들 수 있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대학'이라는 지극히도 속물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향해 나아가라고, 그러기 위해 스스로를 계속해서 검증하고 채찍질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묻고 싶다. "좋은 대학을 가고 싶었던 의지가 없었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 좋은 대학을 엄청 가고 싶었다. 그러다 자퇴를 하고 잠시 나를 내려놓았을 때는 그저 그런 대학에 가고자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어떠한 이유가 생겨 공부를 하게 되고, 고등학교에 재입학해 1점 초반대 내신을 받으면서 나에게 좋은 대학을 가고자 했던 이유와 의지가 있었음이 기억났고, 다시금 열심히 달려 희망하던 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스스로를 내려놓을 무렵, 그때의 나를 정확하게 직시하지 않고 그저 내려놓은 그대로 살아갔다면 지금쯤 후회를 하고 있었을 거 같다.
정말로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상황이라면 위에 글은 다 무시해도 된다. 다만 정말로 좋은 대학을 가고 싶은 사람인데, 현실적인 이유나 심리적 문제로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라면 다시금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봤으면 좋겠다.
자퇴는 전후의 사정을 다 빼고 보면 결국 인생 속의 하나의 선택이다. 그런 선택 하나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의 기댓값을 낮추도록 두지 않길 바란다. 그저 하나의 선택을 거치더라도, 그 상황에 최적화된 방법으로 끊임없이 바라던 것을 쫓아갔으면 좋겠다.
그랬을 때 긴 시간이 지나 과거를 돌아봤을 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나에게 있어서 자퇴는 소중한 경험이다. 그건 내가 자퇴라는 선택을 했지만, 자퇴로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자퇴로 무언가를 잃었다면 자퇴는 아직까지 나에게 아픈 기억이었을 것 같다. 누구에게도 자퇴가 아픈 기억으로 남지 않길 바라며, 그건 상당 부분이 당사자에게 달려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