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독서실?

커버 사진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도서관

by 구디너프

도서관에서는 꼭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책만 봐야 할까? 도서관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렇다. 도서관을 학습 공간이 아니라 연구나 탐구, 소통 공간으로 사용해 줬으면 하는 바람. 한때 도서관마다 독서실이 있던 때도 있었다. 요즘의 스터디 카페 같은 거다. 그런데 많이 후진, 쾌적하지도 않고 음료도 없는 스터디 카페. 그런데도 사람들은 독서실의 한 칸을 차지하고자 도서관 출입구 밖까지 길고 긴 줄을 서곤 했다. 언제부턴가 도서관은 독서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독서실을 모두 없애겠다고. 나는 사서였지만 슬펐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그 긴 줄에 서 있었던 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임용되기 바로 전까지도 나는 도서관에 있는 독서실에서 수험 공부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야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오니 별도의 학습 공간은 필요가 없었고, 고3 때에는 엄마가 수험생 특별 대우로 집 근처 독서실에 연간 회원권을 끊어주셨다. 대학에 가서도 학습 공간은 필요했다. 중간/기말고사도 봐야 했고 취업을 하려면 자격증도 따야 했으니. 학기 중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했지만 방학 중에는 몇 시간 공부하겠다고 부러 왕복 3시간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지금은 학교 앞에 지하철역이 생겨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이제 갈 일도 없지만.) 고학생이나 다름없는 나에게 학습 공간이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어 준 건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친밀한 공간을 적으로 몰아 없애버린다니!


아무렴 그래야죠. 도서관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지 공부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도서관법만 봐도 그래요. 도서관은 지역 주민에게 정보 이용과 문화 활동과 평생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잖아요? 도서관은 새로 나온 책이나, 재미있는 책이나, 재미는 없지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나, 사진집‧화보집 같은 내 돈 주고는 잘 못 사는 고가의 책을 지역 주민들한테 사주고 싶어 한답니다. 도서관은 신작 소설을 낸 작가를 초대해 그 소설이 어떻게, 얼마 만에, 어떤 이야기를 갖고 이 세상에 나왔는지에 대한 강연회를 열고 싶어 하며, 도서관은 여러 사람이 동일한 책을 읽으면서도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지 사람들 간의 다름을 보여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독서모임을 열고 싶어 하죠. 또 도서관은 창조성을 발휘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개인이 구입하기엔 부담스러운 3D프린터, 영상, 음향 장비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해요. 그러니 독서실은 당연히 아웃이죠! 라고 겉으로는 외쳤으나,


속으로는 그리웠다. 방석, 담요, 독서대, 칫솔, 충전기, 텀블러… 등 각종 살림살이를 들고 와 부산스럽게 자리를 세팅하는 사람, 음식 냄새, 담배 냄새, 향수 냄새, 방귀 냄새, 땀 냄새, 발 냄새 등 각종 냄새를 풍기는 사람, 공부하러 온 건지 데이트하러 온 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커플, 손가락 꺾기, 걸쭉한 코 들이마시기, 똑딱거리며 볼펜 눌러대기, 이어폰 밖으로 새어 나오는 음악 등의 각종 소음을 내는 사람, 발로 앞사람을 툭툭 치거나 벗어놓은 남의 신발을 가져가는 사람… 들을 만날 수 있던 그 공간이.


지금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독서실이 없다. 대신 그 공간을 좀 더 창의적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려면서도 자료실에서 공부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공부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학습 공간도 아직은 필요하므로. 나는 지금의 도서관이 좋다. 공부도 조금 하고, 책도 조금 읽고, 강연도 조금 듣고, 토론도 조금 하는, 다양한 일들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