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와 필경사

커버 사진 @ 뉴욕공공도서관

by 구디너프

책상 하나와 북트럭 두어 개. 그것이 내 작업 공간에 있는 가구의 전부였다. 책상을 가운데 두고 북트럭이 좌우에 배치돼 있었는데 그 모양은 ‘ㄷ'자와 같았다.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삼면이 막혀 있는 독서실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앉아 있을 때면 독립된 공간의 안전함과 폐쇄된 공간의 답답함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책상 위에는 모니터, 독서대, 작은 책꽂이가 놓여 있었다. 독서대에는 늘 분류표가 놓여 있었다. 낮에는 펼쳐진 채로, 밤에는 짙은 파랑의 표지가 덮인 채였다. 표지에는 한국십진분류법이라는 제목이 금빛으로 박혀 있었다. 책꽂이에는 책을 정리하는데 필요한 참고서적들이 꽂혀 있었는데, 두께로 보나, 듀이십진분류법, 한국목록규칙과 같은 제목으로 보나, 사서가 아니라면 읽어주는 이가 없을 것 같은 책들이 진열돼 있었다.


책상 위가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공간이라면 북트럭은 반대로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이었다. 북트럭은, 쉽게 말하면 바퀴가 달린 미니 서가라고 볼 수 있는데, 3단 양면으로 나뉜 트럭에는 정리를 기다리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어느 날엔 소설이, 어느 날엔 정부에서 발행한 하얀색 표지를 갖고 있는 백서들이 실려 왔다. 또 다른 날엔 까맣게 때가 탄 책들이 케케묵은 냄새와 손끝을 간질이는 벌레와 함께 오기도 했다. 항구에 정박했다 출항하는 배처럼, 다양한 책들을 실은 수많은 트럭이 들어왔다 나가곤 했다.


나는 매일 책들로 둘러싸인 우주적인 공간에 앉아 표지와 표제지, 판권지를 오가며 책을 정리했다. 책의 이름을 불러주고, 책을 쓴 저자의 삶을 읽고, 책이 태어난 장소와 시간을 공유했다. 책의 키(크기)와 몸무게(쪽수)를 쟀고, 책장들을 넘겨 가며 그 안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삽화들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서문과 목차를 훑으며 책에 담겨 있는 내용에 따라 그 책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번호를 붙여주었다.


이런 일들은 소리 없이, 하지만 가열하게 이뤄졌다. 책을 정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가 낮은 음색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사무실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북트럭을 밀고 끄는 소리, 책을 빼고 꽂는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아득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그렇게 2년여를 일했을 무렵의 어느 나른한 오후였던 것 같다. 책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켜던 순간, 나는 책을 정리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구부러진 등, 책과 모니터를 오가며 끄덕이는 머리, 좀처럼 열리지 않는 입,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손놀림에서 중세 시대의 필경사의 모습을 본 것이다.


수도원의 필사실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리는 펜이 긁히는 소리, 간헐적으로 들리는 기침 소리 혹은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뿐이었다. 저녁 종이 울리면 수사들은 나가서 식사와 기도를 하고 마침내 잠자리에 들었다. 동트기 전에 아침 종이 울리면 일어나서 다시 필사실로 가 조용한 필사 작업을 시작했다. 이런 일과는 안식일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이루어졌다. <도서관의 탄생(예경출판사, 2012년)>


오늘날의 사서들은 중세 시대의 필경사처럼 느리게, 한 권의 책에만 몰입할 수 없고, 필경사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을 베끼지도 않지만 한 가지 비슷한 점이 있긴 하다. 필경사들을 필사를 끝낸 후 개인적인 후기나 헌사를 책에 적어두곤 했는데, 헌사 중에는 ‘드디어 끝났구나! 녹초가 된 내 손도 이젠 쉴 수 있겠네’, ‘이제 모두 끝냈으니, 빨리 돈을 주세요’, ‘필사를 계속하여, 좋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기를’과 같은 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기는 ‘끝났다! 아, 고맙습니다’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모든 책의 정리를 끝낸 12월 마지막 날에 하는 말도 ‘아, 끝났다’로 필경사들의 후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