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 @ 미국의회도서관
대학도서관에 온 지 이제 반년 즈음 되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벌써 세 번이나 울었다. 일이 힘들어서…는 아니고 사람이 힘들어서…도 아니다. 별것 아닌 일에 감동받아서다. 나는 원래 잘 운다. 잘 우는 건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다가 문득 슬픈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모두 아빠를 쳐다본다. 어김없이, 조용히 울고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일하면서도 종종 운다. 문제는 ‘쟤 왜 저래’ 하는 포인트에서 운다는 것이다. 내가 운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갑자기 기침이나 하품을 한다던가, 손을 들어 올려 마른세수를 하는 등, 생각해 내서 지금까지 그럭저럭 놀림받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처음 울던 날은 학술대회의 식전 행사에서였다. 학부 학생들이 모여 만든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다. 클래식에 갓 입문한 나이지만, 올해에만 벌써 두 번이나,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공연에 다녀온 터라, 내 귀는 클래식을 조금은 들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런 내게 학생들의 연주는 귀여웠다. 불협화음도, 이리저리 새거나 흐트러지는 음, 바이올린의 불안정한 음정도 내 귀에는 분명 들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뇌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눈은 울고 있었으니.
‘난 그곳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내 안에 있는 인생을 진정으로 느꼈다. 음악은 아름다웠고 그 아이들도 아름다웠다. 그들을 사랑할 순 있어도 소유할 순 없다. 세상을 사랑해도 소유할 수 없었듯이. 난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
라고, 브래드(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주인공)처럼 말하며 울고 있었다.
두 번째 역시 연주회에서였다. 도서관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작은 음악회를 연다. 연주 장소가 도서관 로비이다 보니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연주회가 열리는 시간은 점심시간. 연주회가 있는지 몰랐던 사람들도 식후 산책을 하며 음악 소리를 듣고 삼삼오오 모여든다. 버스킹 같은 연주회다. 이번 연주 팀은 대학원 학생들이 만든 음악동아리. 대학원생들은 학부생들보다 성숙한 편이다.(돌려 말했지만 실은 나이가 많다는 뜻) 가정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음악동아리를 만들어 이렇게 연주회까지 하다니. 그것부터가 나에겐 울음 포인트였는데, 오카리나, 피아노 듀엣, 플롯 듀엣, 리코더, 첼로 연주를 거쳐 앙상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가 시작되자 터졌다. 아마추어 동아리의 서툴고 어눌한 연주와 박수를 치고 두 손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관객 속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이 들렸기 때문이다.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마지막은 '북드림' 행사에서 가져온 책을 읽다가 울었다. 도서관에서는 정기간행물 과월호와 기증받은 도서 중 일부를 학생과 지역 주민들에게 나누는 행사를 연다. 요즘처럼 책이 홀대받는? 세상에서도 책나눔 행사는 인기가 좋다. 내가 가져온 책은 김영갑 사진작가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였다.
제주의 자연과 사람을 사랑한 작가 김영갑. 그는 끼니도 굶어가며 대충 지은 움막에서 지내면서도 돈이 모이면 필름과 인화지를 사서 이십 킬로가 넘는 장비를 메고 새벽부터 저녁까지 제주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사진에 몰두했다. 그러다 어느 날 찾아온 병으로 카메라를 들 수도 셔터를 누를 수도 없게 되자 그는 모든 치료를 거부하고 제주의 폐교에 갤러리를 만든다. 제주의 자연, 돌, 바람을 담은 갤러리의 이름은 한라산의 옛 이름인 ‘두모악’.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고, 평생 아름다움을 좇았고, 그것을 우리에게도 나눠주었던 사람. 책을 덮으며 면지를 보니
사진작가 이야기다. 이사 온 선물이다. 일독을 권한다. 사랑하는 아빠. 2010년 12월 19일
라는 문장이 쓰여 있다. 이미 울고 있던 내 눈에 눈물 방울이 더 커진다.
혹시 거기 울고 싶은 사람 있나요? 울고 싶을 땐 도서관으로 오세요. 도서관에는 소소한 눈물 버튼이 많답니다. 사랑도 있고 사람도 있고 삶도 있어요. 음악을 들으며 울고 책을 읽으며 울고 사람을 만나며 울어요. 어때요? 같이 울지 않을래요? 내가 옆에 있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