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사진 @ 헝가리국립아카이브
Q. 그러고 보니 아카이브에서도 일했잖아요?
A. 질문 끝난 거 아니었어요?
Q. 서점에 대한 질문은 끝났고요, 이제 아카이브에 대한 질문이요.
A. 아, 네. 민속 아카이브에서 삼 년 일했어요.
Q. 그럼 도서관과 아카이브는 어떻게 달라요?
A. 저는 아카이브에서 기록연구사나 학예사로 일한 게 아니어서, 그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답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맛만 본 수준이에요.
Q. 감안하고 들을 테니 그래도 한번 가시죠. 5문 5답.
A. 제가 엉뚱한 답을 해서 돌이 날아오면 대신 맞아주신다는 데 동의하시면 할게요.
Q. 누가 이 글을 그렇게나 많이 읽겠어요? 그냥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도서관과 아카이브가 다루는 자료는 성격이 다른가요?
A. 네, 도서관은 주로 발행되어 유통되고 있는 자료를 다뤄요. 우리가 흔히 서점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자료들이요. 그런데 일반 출판사에서 발행한 정식 출판물은 아니지만 정부‧공공기관 등에서 발행하는 자료들도 있어요. 정책보고서, 연구보고서, 통계자료, 매뉴얼 같은 거요. 그런 자료를 회색문헌이라고 하는데 그런 자료도 다루죠. 이와는 반대로 아카이브에는 날 것 그대로의 자료가 들어와요. 누군가 생산해서 가공하지 않은 자료. 제가 일한 곳은 민속 아카이브였는데 민속 현장에서 생산한 사진, 음원, 영상 자료가 많았어요. 작가들은 날 것의 자료는 절대 세상에 내놓지 않잖아요. '모든 초고는 걸레'(헤밍웨이 말)라는 믿음 때문에 그것을 서랍 속 어딘가에 꼭꼭 숨겨뒀다가 사후에 유족 등이 발견하고 발행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잖아요? 그런데 아카이브는 사진을 찍고 음성을 녹음하고 영상을 촬영하면, 찍히고 녹음되고 촬영되는 순간 그것이 바로 기록물이 되고 자료가 되요.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찍은 모든 사진들 역시 아카이브라고 볼 수 있죠.
Q. 그럼 도서관 근무 경험을 아카이브에 활용한 적 있어요?
A. 자료의 성격은 다르지만 자료를 수집, 정리, 이용하는 전반적인 절차는 같거든요. 도서관에서의 경험을 두루 활용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정리 업무요. 도서관을 아주 오랫동안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데 많은 노력을 해왔거든요. 그 지침들을 아카이브 정리하는데 적용했어요. 한 가지 차이점은 도서관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의 최상위 목적이 이용이에요. 자료를 열심히 모으는 것도, 자료 정리를 할 때 쓸데없어 보이는 내용까지 목록에 적어 넣는 것도 모두 자료를 잘 찾아서 잘 이용하게끔 하려는 거예요. 반대로 아카이브는 이용보다는 보존이 더 큰 목적이라서, 내부 구성원이 자료를 잘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만, 도서관에 비해서는 좀 더 간단하게 정리를 하면 되더라고요.
Q. 도서관과 아카이브 중 어디가 ‘정답 없는 일’이 더 많았나요?
A. 답 없는 일은 어디에나 있겠지만 아카이브에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답이 없다기보다는 아카이브 자료는 특정 플랫폼을 거쳐서 발행된 형태가 아니다 보니 언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모를 자료가 많았어요. 그 정보를 일일이 찾아서 기록해야 하고, 기록했다 하더라도 나중에 더 명확한 근거를 가진 정보가 나타나면 수정해야 하고. 어떤 한 가지 기준을 정해놓고 일을 처리하려 해도 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경우의 수가 도서관에 비해 많았던 것 같아요. 아카이브는 표준, 규격 같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양에 눌리기도 해요. 인구와 식량은 서로 다른 속도로 증가한다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적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도서관 자료는 등차급수적(1,000 → 1,200 → 1,400 → 1,600…)으로 증가하는데 아카이브는 등비급수적(1,000 → 2,000 → 4,000 → 8,000…)으로 증가하는 느낌이었어요. 제가 체감하기로는. 아니면 자료들이 수장고에서 자가증식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Q. 도서관에서는 ‘정보의 구조’를 보고, 아카이브에서는 ‘이야기의 구조’를 본다는 데 공감하나요?
A.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도서관은 정보 단위의 구조에 집중해서, 자료를 분류하고 색인해서 이용자가 필요한 자료를 잘 찾을 수 있는 방법에 골몰해 있는 것 같고, 아카이브는 이 자료가 왜 생겼고 누가 만들었고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다른 자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궁리하는 것 같아요. 답을 하다 보니 제가 아카이브에서 일하면서 어려웠던 게 바로 그 점이었네요. 민속을 몰라서 민속이라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 없었다는 점이요.
Q. 두 곳에서 일할 때 ‘시간’을 대하는 방식이 달랐나요?
A. 글쎄요, 아카이브에서 일할 때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박물관은 백 년을 보고 일한다.’였거든요. 도서관에서는 자료 정리할 때 띠지, 책커버 이런 것들을 가차 없이 버려요. 자료를 미학적이나 보존용 목적이 아니라 순수 100% 이용의 목적으로 보기 때문에요.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버리는 게 없어요. 어느 날 수장고를 정리하다가 빈 필름 통이 가득 찬 박스 하나를 발견했어요. 누가 게을러서 이걸 안 버리고 모아놨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거 버려도 되냐고 물었더니, 그 빈 필름 통들이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을뿐더러 백 년 후에는 유물이 될 수도 있다는 긴 연설을 들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는 백 년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요. 왜일까요? 인류의 모든 역사가 기록된 책을 이야기하기에 백 년은 너무 짧기 때문이죠. 결국 도서관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영원을 믿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