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마니차@티베트
티베트의 중심 라싸에서 천불절벽으로 가던 길이었다. 천불절벽은 '천 개의 부처님 얼굴이 새겨진 절벽'을 말하는데 불심이 깊은 티베트 사람들은 신성한 이곳에 모여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천불절벽은 마치 하나의 광장 같았다. 아니 로터리 같았다. 작은 길들이 갈래갈래 이어져있었다. 나는 갈래 길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스탠바이하고 있다가 감독의 큐사인에 맞춰 걸어 나오는 단역 배우 같았다. 행인으로 가장하고 곳곳에 숨어 있다가 음악의 재생 버튼이 눌러지면 등장하는 플래시몹의 참가자들 같기도 했다.
나는 끊임없이 밀려 나오는 사람들의 숫자에 놀랐고 손이면 손마다 들려있던 이상한 도구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들은 손에 이상한 모양의 장난감 같은 것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의 모양은 이러했다. 나무막대로 만든 손잡이가 있고 그 위에는 원통이 꽂혀있다. 원통 한 귀퉁이에는 체인이 걸려 있는데 그 끝부분에 동전 같은 추가 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막대를 앞뒤로 가볍게 흔들었다. 무거운 추 때문인지 막대 위에 놓인 원통이 빙글빙글 돌았다. 그것의 이름은 '마니차'였다.
마니차는 티베트 사람들이 기도를 올릴 때 사용하는 도구다. 염주나 묵주를 손에 들고 알을 세어가며 기도를 올리는 것처럼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를 돌리며 기도를 올린다. 원통 안에는 돌돌 말린 경전이 들어있는데 원통을 한번 돌릴 때마다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경전은 티베트 승려들만이 읽을 수 있는 어려운 언어로 기록되어 있어 일반 사람들은 읽을 수 없다. 나랏말싸미 어려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던 것처럼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엿비 여겨 누군가 마니차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나는 티베트에서 어딜 가든 그런 무리들과 마주쳤다. 손에 마니차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는 사람들을.
여행이 끝나갈 무렵 조캉사원에 들렀다. 조캉사원은 오랜 세월 동안 티베트 사람들의 영적인 중심지이자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지는 사원이다. 그러다 보니 사원 주변에 불교 도구를 판매하는 가게가 많았다. 그곳에서 마니차를 사기로 했다. 마음에 근심이 생길 때마다 마니차를 돌려볼 요량으로. 부드러운 황금빛 천에 싸여있는 마니차는 종교가 없는 내게도 신성한 광채를 발산하고 있었다. 나는 실례가 되지 않을까 침을 꿀꺽 삼키며 원통 안에 '진짜 경전'이 들어있는지 물었다. 빈 깡통을 돌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가게 주인은 흔쾌히 통을 열어 돌돌 말린 얇은 종이 뭉치을 꺼내보였다. 해독할 수 없는 글자가 깨알 같이 박혀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휴가는 끝났고 회사로 복귀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머리 위에 시커먼 비구름이 떠다니고 마음속에 분노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퇴근 후 서재에 들어가 작은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고 마니차를 쥐었다. 티베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니차를 슬렁슬렁 돌려보지만 불순한 마음 때문일까. 마니차는 잘 돌아가지 않는다. 원통에 달린 추가 자꾸 손가락을 때린다. 그래도 효과는 있다. 육체의 고통으로 마음의 근심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