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러비를 어떻게 할까?
고스톱 게임의 경제학 1편 : https://brunch.co.kr/@bicco/13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상평통보 당백전을 발행했다. 말 그대로 '당백', 기존 화폐인 당일전의 100배, 당이전의 50배 가치를 가진 동전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100배'라고 적어서 찍어낸 것에 불과했다. (100원짜리 동전에 10000원이라고 적어서 10000원의 가치를 부여한 셈)
흥선대원군은 화폐를 찍어내면 그냥 유통된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결과는 참혹했다.
돈의 가치는 폭락했고, 1년 동안 찍어내다가 2년 만에 유통이 금지되었다. 동전이니 결국 고철이 되었을 뿐이다.
지금의 게임 회사들도 하지 않는 일을 150년 전에 실제 화폐로 실행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이 인플레이션의 원리는, 놀랍게도 고스톱 게임머니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게임 회사는 게임머니를 판매해서 돈을 번다.
앞서 설명했듯이 그 원천은 딜러비, 즉 수수료를 회수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게임머니를 마구 찍어내서 팔면 매출이 늘어날까?
당연히 아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듯이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용자 수는 제한적이고, 하루는 24시간이며, 일반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시간이 있다.
그 안에서 유통될 수 있는 게임머니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임머니를 무분별하게 발행하면 당연히 그 가치는 떨어진다.
굳이 기축통화의 개념까지 가지 않아도, 돈을 찍어내면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게임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매출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역시 딜러비에 있다. 정확히는 게임머니를 회수해서 그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게임머니를 풀면 매출은 늘어나지만 가치는 떨어지고, 반대로 게임머니를 회수하면 매출은 줄어들지만 가치는 올라간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핵심이다.
회수를 늘리기 위해 딜러비 요율을 높이면 어떻게 될까? 유저들은 화를 낸다. 그게 전부다.
대부분의 고스톱 게임에서 7%에서 8%로 설정된 딜러비 요율은 이제 일종의 룰처럼 되어버렸다.
포커는 게임머니 단위가 크고 여러 명이 치니까 1.5%(유료 회원 기준)에서 5% 정도까지 부과한다.
이 7%라는 숫자도 상당한 고민 끝에 나온 것이다.
우선 7%는 계산하기 쉽지 않다.
만약 10%로 했다면 계산이 간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10%를 넘어서는 순간 유저는 딜러비가 과도하다고 느낀다. 9%도 마찬가지다. 1%부터 천천히 올려온 딜러비 실험은 8%를 넘어선 순간 극심한 고객의 반발과 이탈을 불러왔다. 그리고 유저는 그냥 다른 게임 업체, 딜러비가 싼 곳에서 치면 된다. 대안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딜러비를 낮춰서 경쟁사 고객을 끌어들이면 되지 않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딜러비가 낮으면 유저에게 게임머니가 쌓이는 현상이 생기고,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진다.
이 게임은 물론 고스톱머니를 따기 위해 하는 게임이지만, 무조건 딸 것을 기대하고 게임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따고 잃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므로, 게임머니가 과도하게 쌓여서 그 가치가 낮아지면 게임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딜러비 요율을 건드리기 어렵다면, 게임머니를 많이 회수하기 위해 게임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 번째 방법은 게임을 많이, 오래 하게 만드는 것이다.
10판을 쳤을 때보다 100판을 쳤을 때 당연히 회수되는 딜러비가 많아진다.
많이 치도록 하기 위한 장치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올인이 되면 자동으로 리필을 해준다든지, 특정 판수에 도달하면 보너스 게임머니를 지급해준다든지 하는 장치들이다.
그리고 근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게임을 재미있게 만들면 인당 판수는 늘어난다.
이 부분은 게임 기획의 영역이다.
피망의 경우 일반적인 맞고와 고스톱에 이어 다양한 변형을 선보였다.
보너스 패의 기능을 강화한 뉴맞고, 트롯을 들으며 쿵짝(뒷패가 맞는 것)을 하면 점수가 올라가는 룰을 도입한 트롯맞고, 스토리 기능을 보강하고 타짜의 IP를 도입한 온라인 타짜 등을 연이어 출시했다.
재미 요소를 너무 많이 넣으면 게임의 본질이 흐려지는 문제도 있어서,
피망의 경우 뉴맞고, 맞고, 트롯맞고 순으로 유저가 많은 편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한 판에 회수하는 딜러비를 높이는 것이다.
점당 100원 채널에서 최소 점수인 7점으로 승리하면 700원의 7%인 49원이 딜러비로 회수되지만,
점당 10,000원 채널에서는 무려 4,900원이 회수된다. 100배 차이다.
그래서 회사는 고객이 높은 채널에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채널 리밸런싱'이다.
고스톱머니의 유통량과 채널별 유저 수, 채널별 판수, 1인당 보유 고스톱머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고스톱머니 보유 현황, 즉 게임 내 등급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채널을 제한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고스톱머니 100만원을 가진 유저가 점당 100원부터 점당 500원 채널을 이용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면, 채널 리밸런싱을 통해 점당 500원부터 점당 1,000원까지로 방문 가능한 게임 구간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고도의 민감성을 요구한다.
판 규모가 큰 채널로 고객을 보내면 회사 입장에서 좋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차피 가상의 게임머니에 불과하고 게임 그 자체를 소소하게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판돈의 규모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미 상위 채널에 있던 고객 입장에서는 적은 돈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반가울 리 없다.
이 모든 불편함과 변화는 결국 유저의 이탈을 불러올 뿐이고, 이는 당연히 회사 입장에서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따라서 회사는 채널 리밸런싱에 극도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고, 자주 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며칠 만에 유저의 반발이 심해지면 롤백하는 경우도 있다.
채널을 합치기도 하고, 반대로 세분화하기도 하며, 무료 리필되는 게임머니의 규모와 횟수를 조정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데이터는 채널별 인당 판수다. 보유한 게임머니별로 특정 채널에서 인당 판수가 줄어드는 구간을 보고, 해당 구간의 유저를 강제로 상위 채널로 이동시키거나 하위 채널로 내리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