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머니가 아닌 경험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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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8년, 숙종이 전국에 상평통보라는 동전을 풀었다. 하지만 백성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저게 무슨 돈이오? 먹지도 못하는 쇳조각을."
장돌뱅이들은 여전히 쌀과 베로 장사를 했다.
손에 잡히는 게 믿을 만했다. 동전은 아이들 장난감 신세였다.
그런데 한양의 큰 상인 몇이 동전을 쓰기 시작했다.
의주에서 인삼을 사올 때 쌀 백 가마 대신 주머니 하나면 됐다.
한번 경험해본 상인들의 눈이 번쩍 떴다. 거래가 빨라졌고, 더 멀리 장사를 다닐 수 있었다.
10년이 지나자 조선의 경제는 둘로 나뉘어 있었다.
동전을 쓰는 큰 상인들은 수천 냥을 굴리며 전국을 무대로 했다.
여전히 쌀로만 거래하는 시골 장시의 행상들은 무거운 쌀가마를 지고 다녔다.
그런데 동전의 편리함을 알게 된 부자들과 관청이 이상한 짓을 시작했다.
동전을 땅에 묻고 창고에 쌓아두기 시작한 것이다.
동전을 쓰는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졌으니, 동전 자체가 재산이 되었다.
시장에서 돈이 사라졌다. 이를 전황(錢荒), 즉 '돈 가뭄'이라 불렀다.
동전을 경험해본 사람들은 이제 그것 없이는 장사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돈은 소수의 창고에만 쌓여 있었다. 동전의 가치는 치솟았고, 경제는 멈춰섰다.
작은 동전 하나가 얼마나 큰 세상으로 가는 문인지, 써보기 전엔 몰랐다.
그리고 한번 그 세상을 맛본 사람들은, 이제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
앞서 1편에서는 고스톱 게임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딜러비)에 대해 알아보았고,
2편에서는 이를 위한 게임회사의 고민과 사업 관점에서의 일(채널 밸런싱)에 대해 알아보았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지금까지 "경제학"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긴 했지만
결국 게임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고객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고객의 지갑은 딜러비 차감만으로 쉽게 열리지는 않는다.
이는 심리적인 부분과 연관이 있는데, (경제학도 모자라 심리학까지?)
고스톱 게임 유저를 대상으로 질문을 해본다.
"2천원을 드릴테니 커피 한잔과 고스톱머니 1억원 중 무엇을 사시겠습니까?"
많은 유저들이 아마도 커피 한잔을 선택할 것이고, 실제로 그러하다.
고스톱머니는 무려 영.구.소.장. 가능한 아바타를 끼워주지만,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
커피는 즉각적인 현실 만족과 실체를 제공하는 '합리적인 작은 행복'으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디지털 콘텐츠는 가변적이고 불확실한 가상 자산을 구매하는 행위로 인식되어 더 큰 심리적 저항과 아까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집에서 VOD 구매하는 건 괜히 아까운데, 영화관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건 아깝지 않은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VOD는 영구소장이지만, 실체가 잡히지 않는다.
영화관을 가면 팝콘도 사먹어야 하고 돈을 훨씬 더 많이 쓸 수도 있지만,
대형 화면과 압도적 음향이 주는 (집에서 돈주고도 절대 할 수 없는) 경험이 있다.
그래서 게임회사에서는 이런 광고 문구를 쓴 적도 있다.
"커피 한잔 값으로 매월 고스톱 머니 10억씩 충전하세요"
이 메시지가 어떻게 보이는가?
사견이지만 너무 1차원적이여서 매력적이지 않다.
많은 고객들은 "됐고, 그냥 커피 사먹을게." 라고 생각할 것이다.
애초에 동일시 할 수 없는 재화를 동일 선상에 놓고 동일한 가치라고 주장해봐야 고객은 공감하지 않는다.
경험을 팔아야 한다
결국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기위해서는 "유료로 구매한 게임머니의 재미"를 경험해보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무료로 충전해서 점 100원짜리 채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점 10000원짜리 채널로 올라갈 수 없다.
고스톱은 실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확률 게임이기 때문이다.
점 100원 짜리 채널에서 연전 연승을 해서 10,000원을 땄다고 치자.
점 10,000원짜리 채널로 가면 1판에 70000원이 오고간다.
잃은 누군가는 허탈할 수도 있겠지만 따는 누군가의 기쁨은 점 100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조선의 동전처럼, 고스톱머니도 한번 그 세계를 경험해본 사람은 돌아갈 수 없다.
점 100원 채널만 치던 유저가 점 10,000원 채널의 짜릿함을 알게 되면, 다시 점 100원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유료로 게임머니를 사지 않는 사람에게 그에 준하는 수준의 무료 머니를 줘가면서까지
고스톱 머니 유통량을 늘려 경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건 위험하다.
이에 회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유료 구매에 준하는 행위를 유저에게 요구한다.
예를 들면, PC방에서만 특별히 쿠폰을 지급한다던가 광고를 보고나면 게임머니를 지급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유저는 비로소 진정한 고스톱 머니의 경제 세계에 진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게임머니 유통량의 관리
실제로 회사에서는 게임머니 "유통량"을 엄격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유통량의 대부분은 최상위 채널(보통 점 100만원 정도)에서 발생한다.
쉽게 생각하면 점 100원짜리 채널의 1만배의 게임머니가 점 100만원 채널에서 유통된다.
게임회사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게임머니의 '전황'이다.
상위 유저들이 머니를 쌓아만 두고 게임을 하지 않으면, 하위 채널에서는 머니 유통이 막혀 경제가 얼어붙는다. 조선시대 부자들이 동전을 땅에 묻었듯이, 게임머니가 일부 유저에게만 집중되면 전체 생태계가 위험해진다.
이 이야기는 반대로 보면 최상위채널의 유저는 유료로 게임머니를 구매했다는 것으로 봐도 된다는 것이고,
최상위 채널의 유저가 늘어나면 고스톱 게임의 경제도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회사는 상위 채널을 계속 경험 시키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유료 상품들을 내놓는 것에 사업 전략을 맞추고 있다.
채널로 보는 고객의 생애가치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고스톱머니를 어떻게 얼마나 쓰는지로 고객의 lifetime을 예상해볼 수 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점 100원 채널에서 10000판을 치나, 점 10,000원 채널에서 100판을 치나 유통되는 고스톱머니는 같거나 오히려 점 10,000원 채널이 더 많다.
따라서 고객이 어느 채널에서 얼마만큼의 게임머니를 유통시키는 걸 보면 이 사람이 유료 구매를 한 적이 있는지, 또는 할 가능성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회사는 유저의 채널 이동 패턴을 면밀히 관찰한다.
1) 점 100원 → 점 1,000원으로 상승: 게임머니 경험 입문자
2) 점 10,000원 채널 정착 : 유료 구매 가능성 높은 고객
3) 점 100만원 채널 도달: 핵심 매출 고객
흥미로운 것은 한번 상위 채널을 경험한 유저는 거의 하위 채널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점 100만원 채널에서 모든 머니를 잃어도, 이들은 다시 충전해서 같은 수준의 채널로 돌아온다.
조선시대 동전을 써본 상인이 다시 쌀가마를 지고 다닐 수 없었던 것처럼.
3편에 걸쳐 고스톱 게임의 경제를 들여다봤다.
딜러비로 시작해서, 채널 밸런싱을 거쳐, 유저의 지갑을 여는 방법까지. 결국 이 모든 것은 '경험'을 파는 사업이었다.
점 100원의 세계와 점 100만원의 세계는 같은 게임이지만, 전혀 다른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차이가 바로 게임회사의 매출이 된다.
작은 동전 하나가 큰 세상으로 가는 문이었듯이,
게임머니 충전 하나가 전혀 다른 게임 세계로 가는 문이 된다.
그리고 한번 그 문을 연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