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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의 성과 측정_3

미디어렙의 진화

by 초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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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2월 22일, 한성주보에 '덕상세창양행고백(德商世昌洋行告白)'이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덕국(독일) 무역상사 세창양행이 낸 이 광고는 한국 최초의 근대 상업광고로 기록된다.

흥미롭게도 당시에는 '광고'라는 단어 대신 '생각을 사실대로 말한다'는 뜻의 '고백(告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미지나 사진 없이 순한문으로만 작성된 이 광고는 세창양행이 무엇을 사고파는지 담담하게 나열했다.

호랑이 가죽, 수달 가죽, 사람 머리카락 같은 조선의 토산물을 사들이고, 자명종 시계, 뮤직박스, 서양 옷감, 유리, 성냥 같은 서양 물품을 판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어린아이나 노인이 와도 속이지 않고 공정한 가격으로 거래하겠다"는 문구를 넣어 신뢰를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광고를 낸 세창양행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광고를 봤는지, 그중 몇 명이 실제로 물건을 샀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신문에 광고를 싣고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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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이 지난 지금, 디지털 마케팅은 밀리초 단위로 광고 성과를 측정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얼마나 오래 광고를 봤는지, 클릭했는지, 구매했는지 모든 것이 데이터로 남는다.

이토록 정교한 측정이 가능해진 시대에, 마케팅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까는 이제 특정 툴의 사용법이나 개인의 분석 역량에 가까운 문제가 되었다.

사실 이러한 형식의 에세이로 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의 경우 기술의 발전으로 수많은 데이터들이 남고 있기에,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까보다는 수집된 데이터를 어떻게 볼지가 더 중요해진 것도 사실이다.


수집의 측면에서는 "그냥 다 남기면" 되기에 심지어 마우스의 움직임이나 모바일 화면에서의 스크롤까지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데이터는 화면 설계의 영역에서는 샘플링 형태로 좋은 참고 자료가 되겠지만, 마케팅의 성과 측정을 위한 데이터로는 크게 의미를 가져가기 어렵다.

따라서 어떤 데이터를 수집할지, 그리고 그 데이터를 어떻게 가공하고 분석하는지는 디지털 마케팅의 성과를 측정하는 가늠자가 된다.

디지털 마케팅, 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의 성과 측정은 고객의 여정과 동선별로 남는 데이터들의 총량과 전환율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즉, 특정 단계에 광고가 얼마나 노출되었고 그 광고가 몇 명에게 몇 번 도달하였는지부터 광고에 반응하여 클릭한 횟수, 그리고 클릭을 한 이후부터는 다시 해당 홈페이지나 앱에서 전환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로 측정한다.


최근에는 ad tech의 발전으로 디지털 퍼포먼스 광고의 영역에서는 마이크로 타겟팅이 밀리초 단위로 일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광고의 creative보다는 어떤 맥락(context)에서 어떤 매체(media)에 누구를 타겟으로 노출할지를 결정하는 것에 조금 더 무게추가 쏠려있는 편이다.

특히 온라인 커머스를 중심으로 메시지는 전혀 없이, 상품과 가격 정도만 노출하는 형태의 타겟팅 광고는 정말 쉽게 만날 수 있고 심지어 이러한 광고의 성과가 메시지에 공을 들인 광고보다 전환 측면에서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광고가 이토록 퍼포먼스 위주로 돌아가게 된 데에는 구글을 중심으로 네트워크 광고가 보편화되면서부터이다.

과거(10년 전쯤)에는 특정 지면(홈페이지)과 직접 광고를 계약해야 했고, 이에 따라 미디어렙이라는 디지털 광고 종합 판매 대행사가 많은 역할을 했었다.

이제는 미디어렙의 "단순 중개자(Reseller)"로서 전통적인 역할은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광고 지면을 떼어와서 파는" 역할은 더 이상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이다.

일명 프로그래매틱 광고(Programmatic Buying)의 도입으로 과거에는 미디어렙 담당자가 매체사와 통화하며 사람이 직접 광고를 사고팔았지만, 지금은 DSP(광고주 측 플랫폼)와 SSP(매체 측 플랫폼)가 실시간 경매(RTB)를 통해 0.1초 만에 자동으로 광고를 거래한다.

또 빅테크 플랫폼의 직거래 시스템(Self-Serving)으로 구글, 메타(인스타그램/페이스북), 틱톡과 같은 거대 플랫폼들은 광고주가 직접 들어와서 세팅하고 집행할 수 있는 '셀프 서빙' 시스템을 너무나 잘 갖추어 놓았다.

굳이 수수료를 주면서 미디어렙을 거칠 이유가 없다.

이로 인해 광고주의 인하우스(In-house)화가 심해져 데이터 보안과 효율성을 위해 브랜드들이 내부에 마케팅 팀을 꾸리고 직접 광고를 집행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미디어렙은 사라지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

단순히 "광고 자리를 파는 것"에서 "데이터와 기술을 파는 것"으로 업의 체질을 성공적으로 바꾸어나가고 있다.

매체가 너무 많아진 만큼, 광고주 혼자서 이 복잡한 매체 조합(Media Mix)을 최적화하기 어려워졌고 이를 통합 관리하고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주는 컨설팅 역할이 커지게 되었다.

물론 종합 광고대행사에서도 당연히 이러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또 Ad-Tech(애드테크) 기업으로 전환하여 자체적인 DMP(데이터 관리 플랫폼)나 AI 분석 도구를 개발하여, "우리 렙사를 통하면 타겟팅이 더 정교해집니다"라고 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또 통신사 데이터나 쇼핑 데이터 등을 결합해 초개인화된 타겟팅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도 미디어렙의 역할이다.


2023년부터 AI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미디어렙과 광고대행사들은 또 한 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트워크 광고가 난립(?)했던 2010년대 중반에 이어 어떤 식으로 디지털 퍼포먼스 광고 업계가 AI 시대에 대응하고 살아남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다.


마케팅의 성과 측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미디어렙 이야기로 조금 옆으로 샌 느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디지털 광고는 즉시, 정확한 데이터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맥락과 타겟에 맞는 광고의 노출과 이를 통한 클릭과 전환, 이 모든 것들이 데이터로 실시간 남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이렇게 정확한 성과 측정을 하는 것이 어려운 TV광고와 BTL 마케팅의 성과 측정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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