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가치가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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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한 보부상이 시골 장터에서 주민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순조실록에 기록된 이 사건의 여파는 놀라웠다.
사망한 보부상의 형이 동료들을 급히 소집하자, 전국 각지에서 보부상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함께 옥문을 부수고 살인자를 끌어냈다.
이 일화는 보부상 조직이 얼마나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보부상들은 단순히 물건을 나르고 파는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 임소(지역 거점)를 두고, 접장을 선출하여 체계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어느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동료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 양식을 조달하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군량을 운반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런 공로로 그들은 어염(魚鹽)·토기·목기 등의 전매권을 보장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성과 측정 방식이다.
보부상들은 단순히 "얼마나 팔았는가"만 보지 않았다.
전국 몇 개 지역에 임소를 운영하는지(네트워크 규모),
얼마나 많은 동료를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지(조직력),
어느 지역의 어떤 물건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지(시장 점유율),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단골을 확보했는지(고객 충성도)가 그들의 진짜 성과였다.
개별 보부상의 단기 매출보다는 조직 전체의 장기적 영향력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는 마케팅이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과 같다.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
마케팅의 성과를 어떻게 측정하는지에 대해 논의하기에 앞서,
마케팅의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좁은 의미로는 최종 매출(전환)만 보면 되겠지만,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 경우 마케팅의 성과는 축소되고 폄하되는 경향이 강하다.
어쨌든 사업의 본질은 상품(제품, product)에 있고,
극단적으로는 상품이 뛰어나면 마케팅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과 지표(KPI)는 목표이기도 하지만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목표가 있어야 지향점이 있을 것이기에, 성과 지표의 설정은 마케팅 기획의 시작과 끝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마케팅의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마케터들은 고객의 여정 속에서 답을 찾아가고 있다.
TV 광고에서의 성과 지표 중 하나인 GRPs(시청률의 합)나 CPRP(시청률 획득 비용),
디지털 광고의 노출량(impression), 도달률(reach)과 같은 노출 관련 지표가 아마도 상단에 위치할 것이다.
광고가 얼마나 많이 보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지했는지 정량화할 수 있는 지표다.
디지털 광고 시대가 된 2000년대 후반부터는 다음 단계인 검색(탐색) 관련 지표도 성과로 본다.
특정 키워드의 검색량과 검색 점유율, 검색 결과 내의 상위 노출 여부와 검색 결과에서의 긍정 여론까지,
포털의 검색 결과를 관리(Search Engine Optimization)하는 것이 각광받던 시절도 있었다.
이러한 검색, 탐색 관련 지표는 상위 노출을 위한 알고리즘이 갈수록 복잡해진 2010년대 후반부터 각종 SNS와 유튜브의 성장과 함께 중요도가 조금씩 낮아지다가, 생성형 AI가 보편화된 요즘은 중요도가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버 브랜드 검색으로 대표되는 특정 상품/브랜드의 검색 결과에서의 상위 노출과 검색 결과에서 나오는 정보들은 여전히 마케팅 기획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매체이자 전략 수립의 대상이기도 하다.
고객의 여정에 대해 설명하는 모델들은 정말 다양한데, 기본적으로 깔때기(funnel) 이론에 대부분 부합한다. 깔때기가 아닌 선형, 루프로 설명하는 모델도 있지만, 나는 전통적인 마케팅의 funnel을 선호하는 편이다.
매킨지의 고객 경험 여정 루프는 트리거 포인트(trigger point)가 강조되고 고객의 여정이 순환된다는 특징이 있지만, 전환율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AIDA(Awareness, Interest, Desire, Action) 같은 퍼널 모델들은 일방향이라는 약점 때문에 고객의 유지(retention)를 설명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지만(못하는 것은 아니다),
신규 유치의 관점에서는 접근이 단순해서 각 채널별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기에 용이하다.
결국 성과라는 깔때기의 맨 끝에 많은 결과물이 나오도록 하려면,
깔때기의 입구(노출)가 크거나 깔때기의 기울기가 원통에 가까워서 투입 대비 전환 성과가 높으면 된다.
앞서 이야기한 노출이나 검색 관련 성과 지표들이 우리 상품 밖의(off-site) 지표라면,
깔때기의 중간 또는 끝 단계에 있는 유입 이후의 지표들은 우리 상품 안의(on-site) 지표라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의 마케팅 프로젝트는 "성과"에 대한 정의를 내부 지표(on-site)로 보는 경우가 많다.
노출량이나 검색량 같은 지표들도 당연히 중간 과정 지표로 봐야겠지만,
결국 얼마나 많은 고객이 우리 상품을 찾아왔는지, 그리고 그 상품이 어떤 반응을 얻어 얼마나 팔렸는지를 나타내는 내부 지표를 성과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럼 게임 마케팅의 성과 지표는 무엇일까?
당연히 매출이 최종 지표이지만, 마케팅의 성과 지표를 매출로 삼는 것은 조금 애매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고객이 게임 광고를 보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치자. 그 고객은 처음에는 과금을 하지 않고 게임을 하다가, 어느 순간 게임에 흥미를 느껴 과금을 시작했다. 그럼 그 성과는 어느 팀의 몫인가?
사업팀, 마케팅팀, 아니면 둘 다? 답은 정하기 나름이다.
다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기여도가 있기 마련이므로 사업팀은 주로 매출, 마케팅팀은 트래픽의 유입(유저 수)이나 질(접속 횟수, 게임 횟수)에 조금 더 집중해 성과를 측정하는 편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앞에 언급한 생애가치가 보조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고스톱은 2주간의 게임 기록과 이를 통한 게임머니 유통량을 바탕으로 2년치의 매출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특정 게임 마케팅 프로젝트의 성과는 단순히 몇 명을 유입시켰고,
그들이 게임을 어떻게 했는지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게임머니의 유통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생애가치(lifetime value)로 유입 된 고객이 어느정도의 매출을 일으킬 수 있는지까지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애가치가 마케팅 성과의 전부가 되거나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개별 캠페인의 목적, 목표에 따라 중요도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위 채널(주로 무료로 게임을 즐기는) 대상의 캠페인의 경우 무료 머니의 수급과 게임 판수를 늘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반대로 상위 채널 대상의 캠페인의 경우 유료 구매에 따른 혜택을 어떻게 쓰는지를 볼 필요가 있다.
또 새로운 고객을 유입하기 위한 외부 광고와 캠페인의 성과에서는 채널별 신규 고객 유입 수가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가 되기도 한다.
생애가치는 마케팅의 성과를 측정하는 훌륭한 지표이나, 어디까지나 예측이고 모델링의 결과이므로 목표로 삼기보다는 일종의 지향점으로서의 보조 지표로 보는 것이 좋겠다.
다음 편에서는 성과를 '어떻게' 측정할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