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의 4대 지표
조선 후기, 한 보부상이 시골 장터에서 주민에게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순조실록에 기록된 이 사건의 여파는 놀라웠다. 사망한 보부상의 형이 동료들을 급히 소집하자, 전국 각지에서 보부상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함께 옥문을 부수고 살인자를 끌어냈다. 이 일화는 보부상 조직이 얼마나 탄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보부상들은 단순히 물건을 나르고 파는 상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국 각지에 임소(지역 거점)를 두고, 접장을 선출하여 체계적으로 조직을 운영했다. 어느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순식간에 동료들을 동원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 양식을 조달하고,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군량을 운반한 것도 이들이었다. 이런 공로로 그들은 어염(魚鹽)·토기·목기 등의 전매권을 보장받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성과 측정 방식이다. 보부상들은 단순히 "얼마나 팔았는가"만 보지 않았다. 전국 몇 개 지역에 임소를 운영하는지(네트워크 규모), 얼마나 많은 동료를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지(조직력), 어느 지역의 어떤 물건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는지(시장 점유율), 얼마나 많은 단골을 확보했는지(고객 충성도)가 그들의 진짜 성과였다. 개별 보부상의 단기 매출보다는 조직 전체의 장기적 영향력이 더 중요했다.
보부상의 성과에 대한 고민은 실무에서 마케터가 늘 받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무엇을 성과로 볼 것인가?" 고스톱 게임으로 돌아가 보면, 보부상의 네 가지 성과 지표가 그대로 겹쳐진다.
네트워크 규모는 게임의 전체 고객 수다. 몇 개 지역에 임소를 두고 있느냐가 보부상 조직의 기본 체력이었듯,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게임의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느냐가 플랫폼의 기초 체력이다. 고객이 100만 명인 게임과 10만 명인 게임은 숫자만 다른 게 아니라, 게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의 밀도가 다르다. 매칭 속도, 커뮤니티의 활기, 신규 고객이 느끼는 첫인상까지 전부 이 숫자에서 갈린다.
조직력은 이벤트나 캠페인의 참여자 수로 나타난다.
보부상이 위기 때 동료를 얼마나 빨리 소집할 수 있었는지가 조직의 건강을 보여줬듯, 마케터는 캠페인 하나를 던졌을 때 얼마나 많은 고객이 반응하는지로 고객과의 관계를 가늠한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이벤트 하나에 수만 명이 몰리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혜택을 얹어도 반응이 미지근한 게임이 있다. 참여율은 단순한 이벤트 성과가 아니라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관계 온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시장 점유율은 경쟁사 대비 포지션이다. 고스톱 장르 안에서 우리 게임이 어디에 서 있는지, 경쟁 게임과 비교해 고객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는지가 여기에 담긴다. 보부상이 특정 지역의 어염 전매권을 쥐고 있었다는 것은 단순한 독점이 아니라, 그 시장에서의 존재감과 신뢰를 의미했다. 마케팅에서 포지셔닝이 중요한 이유도 같다.
고객 충성도는 캠페인이 만들어낸 화제성과 입소문으로 나타난다. 단골이 많은 보부상은 새 장터에 나타나기만 해도 사람이 모였다. 충성도 높은 고객이 많은 게임은 신규 이벤트 하나가 커뮤니티 전체로 퍼져나간다. 이 고객들은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아도 스스로 바이럴을 만든다.
매출이라는 최종 숫자 이전에, 이 네 가지 층위가 촘촘히 쌓여야 비로소 그 숫자가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을 경영진에게 설명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2010년 무렵, 나는 TV 광고를 집행할 때마다 GRPs(Gross Rating Points, 시청률의 합)라는 지표를 들고 보고서를 썼다.
광고가 방송된 시간대의 시청률을 모두 더한 이 숫자는, 광고업계에서는 캠페인의 규모를 나타내는 기본 언어였다. 문제는 경영진이었다. 보고가 끝나면 어김없이 같은 질문이 돌아왔다. "GRPs가 300이면 유저가 몇 명 들어옵니까?" 노출과 전환 사이에는 인지, 검색, 비교, 설치라는 긴 여정이 있었지만, 그 여정을 한 줄의 공식으로 압축하라는 요구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공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업계에 그런 공식은 없었다. 매번 비슷한 전년도 사례를 들고 와서 "대략 이 정도 범위에서 유입됐습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지금 생각하면 경영진의 질문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도구가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다.
디지털 마케팅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0년 무렵의 디지털 광고 성과 측정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민망할 만큼 단순했다. 배너 광고가 몇 번 노출됐고, 그 중 몇 번 클릭됐는지가 측정의 거의 전부였다. 클릭한 사람이 실제로 게임을 설치했는지, 설치한 사람이 게임을 얼마나 즐겼는지, 어떤 광고 채널에서 온 고객이 더 오래 남고 더 많이 결제하는지를 추적하는 도구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쓰는 유입 채널별 기여도 분석이나 코호트 분석 같은 개념은 몇 년 뒤에야 실무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성과를 정교하게 측정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측정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마케팅이 재미있는 이유이자 내가 평생 붙잡고 있는 고민의 전부는, 결국 매 캠페인마다 고객의 여정이 다르고 그것을 측정하는 방법도, 성과의 의미도 달라진다는 데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깔때기(funnel) 이론이나 맥킨지의 트리거 포인트 모델은 처음엔 그럴싸해 보이지만, 막상 우리 회사에 갖다 대면 맞지 않는 부분이 한두 곳이 아니다. 정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번 새로 써야 하는 문제다.
게임 마케팅의 성과 지표도 마찬가지다. 최종 지표는 매출이지만, 마케팅의 성과를 매출 하나로 삼는 것은 애매한 측면이 있다. 어떤 고객이 광고를 보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치자. 처음에는 과금 없이 게임을 즐기다가, 어느 순간 흥미를 느껴 결제를 시작했다. 그 성과는 어느 팀의 몫인가? 사업팀인가, 마케팅팀인가. 답은 정하기 나름이다. 다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기여도가 있으므로, 사업팀은 주로 매출을, 마케팅팀은 트래픽의 유입(유저 수)과 질(접속 횟수, 게임 횟수)에 집중해 성과를 측정하는 편이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생애가치다. 고스톱은 2주간의 게임 기록과 게임머니 유통량을 바탕으로 2년치 매출을 예상할 수 있다. 특정 캠페인의 성과를 단순한 유입 인원으로만 보지 않고, 그들이 만들어낼 장기적 가치까지 포함해 판단하는 것이다. 다만 생애가치를 성과의 전부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예측이고 모델링의 결과이므로, 목표 지표보다는 지향점을 확인하는 보조 지표로 두는 것이 좋다.
보부상이 단기 매출보다 조직의 장기적 영향력을 더 중시했던 것처럼, 마케터도 숫자 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그 숫자가 의미하는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