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1443년,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완성했을 때 집현전 학사 최만리를 비롯한 신하들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중국을 섬기는 나라에서 문자까지 다르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명확했다. 이 투자의 즉각적인 효용성을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세종은 측정 가능한 단기 성과 대신 장기적 가치를 선택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ROI는 숫자가 아닌 백성의 문자 생활 개선이었다.
당장의 성과를 측정할 수 없는 혁신이었지만, 세종은 과감한 결단으로 밀어붙였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투자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투자가 정말 의미가 있는가"라는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했다.
마케팅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입된 마케팅 비용이 제대로 쓰였는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증명하는 것은 모든 마케터의 숙명이다.
특히 마케팅 패러다임이 ATL에서 BTL로, 그리고 디지털과 모바일로 변화하면서
정확한 성과 측정에 대한 회사의 요구는 더욱 커졌고, 업무 강도 역시 함께 높아졌다.
ATL(TV, 라디오, 신문, 잡지) 광고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절, 성과 측정의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즉시적인 성과 측정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상대적으로 매체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의 완성도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디지털 광고가 보편화되고 애드테크가 발전하면서 거의 실시간에 가까운 ROAS(Return On Ad Spend) 측정이 가능해졌다. 이는 마케터에게 양날의 검이 되었다.
즉각적이고 정확한 성과 측정은 분명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성과의 의미는 매출 또는 유입으로 축소 해석되기 시작했다.
0.1% 클릭률에 일희일비하는 압박 속에서, 마케터는 더 치밀한 숫자 게임을 요구받게 되었다.
고객 여정의 관점에서 보면 딜레마는 더욱 명확해진다.
유입이 아무리 많아도 전환이 되지 않거나, 반대로 전환율은 괜찮지만 노출량이 너무 적어 인지도가 낮다면 어떻게 성과를 측정해야 할까?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대부분의 마케팅팀은 제품 자체의 상품성에 업무적으로 관여하기 어렵다.
전환율 관점에서 성과를 판단할 때, 결과가 좋든 나쁘든 회사 내 책임 소재는 애매해진다.
잘되면 제품팀 덕분, 안 되면 마케팅팀 책임이라는 식이다.
인지도 개선을 보여주는 조사 결과를 제시해도 마찬가지다.
실제 매출이 부진하다면 "그래서 마케팅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런 함정 속에서 많은 회사는 재무적으로 어려워지면 1순위로 마케팅 비용부터 줄인다.
그리고 마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악순환이 시작된다.
재무 성과 하락 → 마케팅 비용 축소 → 유입 감소 → 재무 성과 하락 → 마케팅 비용 축소…
이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경영자의 과감한 결단으로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마케팅 투자를 늘리는 것. 세종대왕처럼 장기적 가치를 믿고 밀어붙이는 선택이다.
둘째, 마케팅팀이 상향식(bottom-up)으로 투입 대비 명확한 성과(ROI)를 증명해내는 것. 데이터와 논리로 투자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법이다.
게임 마케팅은 기반 자체가 디지털 플랫폼이다.
덕분에 다른 산업보다 먼저 정확하고 즉각적인 성과 측정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유저 획득부터 리텐션, 매출 전환까지 전 과정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시스템이 일찍부터 자리 잡았다.
이제부터 게임 업계를 중심으로 마케팅 성과 측정(ROI)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몇 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숫자와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