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12월 4일 밤
1884년 12월 4일 밤, 33살의 청년 김옥균을 필두로 한 개화파는 우정국 낙성식을 기점으로 정변을 일으켰다. 그들은 오랜 시간 준비했다. 일본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개혁안도 치밀하게 작성했다.
14개조로 이루어진 그들의 개혁안은 당대 기준으로 매우 혁신적이었다.
신분제 폐지, 인재 등용, 근대적 조세 제도, 재정 일원화. 종이 위에 적힌 그들의 계획은 논리적이었고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치명적인 준비 부족이 있었다. 군대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 150명과 조선 친위대 일부가 전부였다.
더 큰 문제는 백성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작 '고객'인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이 이 급진적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개화파가 누군지도 몰랐고, 그들이 외치는 근대화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개화파는 자신들의 이상이 곧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청나라 군대가 개입하고 보수파가 반격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백성들은 개화파를 지지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관심조차 없었다.
결국 그들의 완벽해 보였던 기획은 단 3일 만에 실패로 끝났다.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했고, 동료들은 처형당했다.
엘리트 소수가 모여 짠 완벽한 전략도, 정작 고객이 공감하지 못하면 '3일 천하'로 끝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팔고 싶은 가치에만 집중했지, 백성들이 사고 싶은 가치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해에 100만 명에 육박하는 자영업자가 폐업을 한다.
하루 평균 2,700여 명이 문을 닫는 셈이다.
일반적인 자영업 폐업률도 매년 10% 수준이고, 심지어 외식업과 소매업의 폐업률은 20%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5개 중 1개는 1년을 버티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분들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망할 것을 염두에 두고 사업장을 차렸을까?
아니면 최소한 잘 안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출구전략을 수립하고 사업을 시작했을까?
아마도 그런 검토를 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약 사업을 한다고 해도 나 역시 망할 것을 가정하고 사업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은 장밋빛 미래와 대박을 꿈꾸고, 잠을 줄여가며 준비한 사업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고민과 정성을 쏟을 것이다.
실패는 늘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140년 전 개화파가 그랬던 것처럼.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는 마케터들도 어쩌면 새로운 사업장을 여는 사장님들, 그리고 개화파와 마찬가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준비한 캠페인을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또 열광하여 우리 제품이 잘 팔릴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하다.
미리 Media Mix를 분석하여 ROI와 ROAS를 예측해보고, 예상 성과를 정량화하여 실행에 옮길 준비를 한다. 손해를 보는 마케팅 캠페인을 승인해주는 회사는 없을 테니, 모든 지표는 긍정적이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갑신정변의 14개조 개혁안처럼 말이다. 그렇게 실행된 마케팅 캠페인.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신통치 않다.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는커녕 아예 차갑다.
계획된 노출량은 달성해 나간다는 리포팅이 되고, 심지어 예상한 클릭률도 나와서 유입도 나오는데 정작 매출은 생각만큼 오르지 않는다.
상품이 문제인가? 홈페이지가 잘못되었나? 가격이 비싼가? 이때부터 소위 멘붕이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 캠페인의 경우 실시간으로 실적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캠페인 오픈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망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오는 경우도 많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숫자는 너무나 빨리, 냉정하게 현실을 보여준다.
내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2021년의 라이브커머스가 그랬다.
바야흐로 숏폼 콘텐츠의 시기, 누구나 쉽게 라이브로 물건을 파는 시대. 2021년은 그야말로 라방, 라이브커머스의 붐이던 시기였다.
중국에서는 이미 왕홍들이 하루에 수백억 원을 파는 시대가 왔고, 한국에서도 그립, 네이버쇼핑라이브 등 플랫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던 때였다.
우리 회사도 한번 해보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나는 소스라이브, 그립, 유튜브,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등 다양한 라이브커머스 플랫폼에 대해 비교하고 공부한 끝에 3개월 만에 라방을 런칭하였다.
우리가 판매하려던 제품은 음식물처리기였다.
그것도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프리미엄 음식물처리기.
당시 음식물처리기 시장은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고,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가격은 비싸지만 라이브 방송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음식물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는지 직접 시연하면 사람들이 구매 결정을 할 수 있을 거야."
쇼호스트도 섭외하고, 대본도 짜고, 카메라 구도도 정하고, 광고 소재도 만들었다.
심지어 방송에서 사용할 실제 음식물도 준비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개화파의 14개조 개혁안처럼.
드디어 첫 방송을 하는 날.
PD의 큐사인과 함께 방송이 시작되고, 신기하게 우리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늘어났다.
물론 외부 광고도 준비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다.
채팅창에 댓글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쇼호스트는 능숙하게 음식물처리기의 장점을 설명했다. "이렇게 음식물을 넣으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분해가 됩니다. 냄새도 없고요. 환경도 보호하고 집안도 깨끗해지죠."
실제로 음식물을 넣고 작동시키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렇게 100명, 1,000명, 누적 시청자 수가 올라갔다.
사람들은 분명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았다.
채팅에는 "오, 신기하네요", "이거 괜찮은데?"같은 반응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문제는 판매가 단 1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시스템 오류인가 싶어 내가 직접 구매를 했더니 바로 1건이 기록됐다.
시스템은 정상이었다.
문제는 사람들이 100만 원짜리 음식물처리기를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이 스치는 데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쇼호스트는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고 있었고, 시청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지만, 장바구니에 담는 사람도, 결제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실시간 판매 현황을 지켜보면서 속이 타들어갔다. 100만 원이라는 가격이 문제인가? 아니면 제품 자체가 아직 낯선 건가? 방송 진행이 잘못된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미 시작된 방송을 중단할 수도 없었다.
마치 1884년 12월 4일 밤, 정변을 일으킨 개화파가 느꼈을 당혹감처럼 말이다.
이 방송을 그저 중단하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중단을 해도 얻을 것은 전혀 없었다.
계획되고 계약된 시간을 채우는 것 밖에는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방송이 끝날 때까지 결국 10개도 못 팔았던 것 같다. 그야말로 참담한 실패였다.
시청자는 충분히 모았고, 제품 설명도 충분히 했고, 시연도 했지만, 사람들은 사지 않았다.
마치 개화파가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것처럼.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나는 큰 조직의 일원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준비한 기획이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시스템과 자원이 있는 회사였기에, 나는 이튿날 결과 보고를 하면서 왜 안 좋은 결과가 나왔는지 분석해서 상부에 보고하면 그뿐이었다.
물론 창피하고 자존심은 상했지만, 회사는 망하지 않았고 내 월급도 나왔다.
만약 이 방송이 내 사업이고, 내 제품이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단 한 번의 방송으로 사업의 동력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3개월간 준비하느라 들어간 시간과 비용, 그리고 심리적 충격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자영업자들이 느끼는 실패의 무게는 내가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하며 느꼈을 절망감은 또 얼마나 컸을까.
실패 후 복기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잘될 것만 예상하고 단순한 로직으로 결과를 예측했던 것이 패인이었다는 점이다.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음식물처리기가 라이브커머스라는 플랫폼에서 팔기에 적당한 상품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비록 고가 제품이지만 방송을 통해 실제 작동하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장점을 잘 알려준다면 소비자의 고민을 덜어줄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거꾸로 내가 소비자라면? 내가 고객이라면, 라방에서 20~30분 설명을 듣고 100만 원짜리 음식물처리기를 바로 살까?
아무리 작동 시연을 보여줘도, 아무리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그 자리에서 100만 원을 결제할까?
그 질문에 답을 가장 먼저 찾았어야 하는데, 나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솔직히 나라도 라이브 방송을 보면서 100만 원짜리 제품을 충동구매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비교도 해봐야 하고, 리뷰도 찾아봐야 하고, 다른 제품과도 견적을 내봐야 하는데, 라이브 방송의 한정된 시간 안에 그런 고민을 모두 끝낼 수는 없다.
그런데 왜 고객은 그럴 거라고 생각했을까?
개화파가 백성들이 자신들의 근대화 구상을 당연히 환영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기본"을 알지 못한 채 곁가지에서 맴돌았고,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라이브커머스 시청자 수, 홈페이지 유입 수와 일반적인 전환율 같은 숫자들에 매몰되어, 정작 가장 중요하게 바라봤어야 하는 "고객" 그 자체를 놓친 것이다.
100만 원짜리 제품을 사는 사람의 구매 과정은 어떨까? 그들은 얼마나 고민할까?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할까? 그 기본적인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개화파가 백성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기본"에 대한 것들은 사업이 복잡해질수록 더 놓치기 쉬워진다.
그리고 그 기본은 보통 한 가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식 솜씨가 정말 뛰어난 식당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주인이 불친절하거나 위생이 불량하다면 어떨까? 그런 식당이 오래갈 수 있을까?
아마 입소문이 나면서 "맛은 좋은데 거기는..." 하는 식당이 될 것이다.
그럼 음식도 맛있고, 친절하고, 위생적이라면 성공할까?
물론 성공 확률이 그렇지 않은 식당보다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가격은 적정한가? 위치는 찾기 쉬운가? 주차는 편한가? 음식은 얼마나 빨리 나오는가?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가? 예약은 가능한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비주얼인가? 배달도 하는가?
포장은 가능한가?
식당의 성공에 필요한 조건들은 너무나도 많고, 최근의 소비자들은 이 많은 항목들이 모두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보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음식만 맛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본의 기준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개화파가 신분제 폐지와 인재 등용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와 같다.
결국 실패를 줄이는 방법은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기본으로 가정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먼저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철저히 가정해야 한다.
내 주관이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시장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그 고려사항에 대해 우선순위를 정하여 모두 해결해 나가야 한다.
분명한 것은 "기본"으로 정의한 것 중에 한 가지라도 어긋나면 그 사업, 그 마케팅 캠페인은 잘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무통의 물은 가장 짧은 판자 높이까지만 채워진다는 '최소 요소의 법칙'처럼, 한 가지 기본이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
개화파에게 부족했던 것은 군사력이었을까, 외교력이었을까, 아니면 민심이었을까? 아마 전부였을 것이다.
기본의 가짓수를 늘려나가는 고민과 함께, 모든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준비가 완료되었을 때 비로소 실행할 수 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럼 실행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상사가 지시하더라도, 시장이 핫하더라도, 경쟁사가 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만약 김옥균이 군사력과 민심 확보 없이는 실행하지 말자고 판단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망명자가 아닌 개혁가로 역사에 남았을지도 모른다.
내 라이브커머스 실패 이후, 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이 질문을 먼저 던진다.
"내가 고객이라면, 이걸 살까?" 그리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질문한다. "무엇이 기본이고, 그 기본을 모두 충족했는가?"
실패한 100만 명의 자영업자들도, 실패한 수많은 마케팅 캠페인들도, 그리고 140년 전 개화파도, 어쩌면 이 간단한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질문은 던졌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기본은 시대에 따라, 산업에 따라, 고객에 따라 계속 재정의되어야 한다.
10년 전의 기본과 오늘의 기본은 다르다. 그리고 내일의 기본은 또 달라질 것이다.
결국 실패를 줄이는 방법은 단 하나다.
끊임없이 기본을 재정의하고, 그 기본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 그것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