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자이언츠 아재팬 간단 히스토리
야구장에 처음 갔던 기억은 정확하지 않다. 분명히 기억나는 건 1995년이다.
1995년 한국시리즈, 롯데 자이언츠와 OB 베어스의 경기.
아빠와 함께 처음 야구장에 갔고, 그때 들었던 응원가가 아직도 생생하다.
“오비 오비 오비 오비, 승리의 이름! 오비 오비 오비 오비, 승리하리라!”
(멜로디는 어린이 노래 ‘머리 어깨 무릎 발’에서 따옴)
롯데의 응원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OB의 다른 응원가도 모르겠다.
그 노래가 워낙 중독성이 강해서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돈다.
롯데는 1992년에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고, 아빠는 국민학생이던 나를 롯데 야구에 강제로(?) 입문시켰다.
“부산 사람은 롯데를 응원해야 한다.”
(사실 나는 부산 출신도 아니고, 아빠도 엄밀히 말하면 거제 사람이었지만)
아빠 말로는 “롯데가 야구를 잘해야 부산 사람들이 즐겁다”는 이유였다.
92년도에도 직관을 갔던 것 같긴하지만 기억은 희미하다.
확실히 기억에 남은 건 95년 시리즈였다. 2경기 정도 갔는데, 갈 때마다 졌던 걸로 기억한다.
결국 그 해 우승은 OB 베어스였다.
검색해보니 7차전까지 간 명승부였고, 롯데는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참고로 롯데가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간 건, 2025년 현재까지도 그때가 마지막이다.
롯데는 1992년 이후 33년째 우승이 없고, OB 베어스는 두산 베어스로 바뀌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중학생이던 나는 40대 중년이 되었고,
아빠는 살아 계셨다면 70대 후반 노인이 되셨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롯데 팬이 되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나라는 IMF 외환위기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롯데는 4번째이자 현재까지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들어오니 야구에 대한 관심은 뚝 떨어졌다.
3~4시간을 들여 굳이 볼 이유도 없었고, 놀 거리가 너무 많았다.
오히려 국민적 관심사는 메이저리그의 박찬호였다. 가끔 전해지던 박찬호의 승전보가 훨씬 더 매력적이었다.
그럼에도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는데 안 볼 수는 없었다.
상대는 ‘공포의 외국인 쌍포’ 데이비스·로마이어, 그리고 연습생 신화의 홈런왕 장종훈이 버티는 한화 이글스.
롯데는 박정태·마해영, 그리고 ‘싸움닭’ 이미지 1호 외인 타자 호세가 있었다.
타선은 비벼볼 만했지만, 송진우·정민철 원투펀치와 마무리 구대성을 갖춘 한화 투수진이 확실히 앞섰다.
사직 홈에서 2패, 대전에서 1패로 1승 3패. 결국 잠실에서 열린 5차전이 분수령이 되었다.
8회말까지 3:2로 앞서며 6차전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9회초 한화가 손민한을 공략해 4:3으로 역전. 그대로 시리즈는 끝났고 우승은 한화의 몫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화 역시 2025년 현재까지 그때의 우승이 마지막이다.
(개인적으로 저 독수리 캐릭터는 귀여운데 왜 버렸는지 아쉽다)
대학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 준비로 바쁘다 보니 야구와 멀어졌다.
다시 야구장을 찾게 된 건 회사 업무 때문이었다.
부산·경남 지역에서 점유율이 높았던 우리 회사의 ‘피망 뉴맞고’를 홍보하기 위해 컨택한 곳이 바로 롯데 자이언츠였다.
당시 롯데는 7년간 성적이 8888577, 일명 비밀번호로 불리우던 최악의 암흑기였다.
그러던 2008년, 구단은 사상 첫 외국인 감독 제리 로이스터를 영입하며 전성기를 꿈꿨다.
업무 때문에 사직구장을 자주 찾으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관계자 통로를 드나들며 선수들도 자주 마주쳤지만, 광고주 체면상 인사나 사인을 청하진 않았다.
그때 받았던 강민호·이대호 사인 유니폼이 이사 다니며 사라져 버린 건 지금도 아쉽다. 다행히 홍성흔 사인 모자 하나는 남아 있다.
주황색 봉다리 응원과 그 시절 내가 관여했던 사직구장 전광판 광고도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구단과 함께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로이스터 감독 시절, 롯데는 암흑기를 끝내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단기전에서는 번번이 무너졌다.
“전술이 단기전에 맞지 않는다”는 평이 많았지만, 결과론적 이야기라 생각한다.
84년 우승은 너무 오래됐고, 92·95년 시리즈도 희미해져 있던 시점에서, 지금 팬들이 기억하는 전성기는 단연 2008~2010년 로이스터 시절일 것이다.
그때 아빠 손에 이끌려 구장을 찾던 아이들이 이제는 20대가 되어 팬덤의 중심이 되었다.
2010년대 이후 회사 생활이 바빠지며 다시 야구와 멀어졌다. 직관은 거의 없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순위표만 확인했는데, 롯데가 5위 안에 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다 2019년 무렵 아내와 오랜만에 직관을 갔는데, 가장 놀란 건 거의 모든 관중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야구장 1년에 몇 번이나 간다고 10만 원 넘는 유니폼을 사지?”
그 생각은 곧 “기왕 가는 거 기분 내야지!”로 바뀌었다.
2022년에 처음 산 유니폼은 ‘클래식 챔피언 원정 프로페셔널’ 유니폼. 최동원이 84년 우승 당시 입었던 파란색 클래식 모델, 롯데 팬들이 ‘근본 유니폼’이라 부르는 바로 그것.
가격은 12만 5천 원, 마킹까지 하면 15만 원이었지만 노마킹으로 샀다.
하나만으로는 아쉬워서 이대호 은퇴 기념 유니폼도 샀다. 무려 16만 9천 원.
예전 같았으면 비싸다고 쳐다도 안 봤을 테지만, 이제는 그동안의 시간과 여유가 선물처럼 느껴졌다.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니폼이 주는 소속감과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샀을 것이다.
지금은 40대 중반. 가능하면 서울 원정 3연전 중 한 경기는 꼭 직관하려 한다.
올해만 벌써 10번 정도 야구장을 찾았고, 작은 활력소가 되어 주고 있다.
“지금 이 나이에, 지금 이 순간 즐기지 못한다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롯데가 나에게 해준 것은 없지만,
롯데를 응원하면서 즐거움과 에너지를 얻는다.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아쉬움을 함께 나누며, 롯데 팬으로 하나가 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