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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라는 ”기본“을 잊은 가게들

by 초월김

1. 도넛 가게에서 있었던 일


어느 날 도넛 가게에서 도넛 1개를 산 적이 있다.

계산을 마치고 도넛을 건네받는데 도넛이 바닥에 떨어졌다.

굳이 과실 비율을 따지자면 내 잘못이 60% 정도 될 것이다. 내 쪽으로 떨어졌으니 내가 제대로 못 받은 것이겠지.

물론 이건 순전히 내 입장이고, 점원 입장에서는 내 과실 100%를 주장할 수도 있겠다.


여기서 내 입장에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는데, 점원의 말 한마디가 귀에 딱 꽂혔다.


“주워주세요.”


’그래,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고 주워주었더니 그냥 싹 가져가버리는 것이다. 새 제품은 당연히 주지 않았다.

가게나 점원 입장에서는 내 잘못으로 떨어진 것이고, 바닥에 떨어졌으니 치우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럴 수 있다”와 “그래야 한다”의 미묘한 경계이다.


고객이 지불한 도넛의 가격에는 단순히 도넛에 들어간 밀가루와 설탕의 가격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맛있는(또는 고객이 기대한 품질의)’ 도넛을 끝까지 소비하는 경험 전부의 가격이다. 이 가격 속에는 점원과의 커뮤니케이션, 매장의 청결, 매장의 친절함, 매장의 분위기 등 많은 것들이 녹아있다.


그럴 수 있다. 고객이 떨어뜨린 도넛이니 고객이 치울 수도 있다.

그래야 한다. 고객이 떨어뜨린 도넛은 고객이 치워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 도넛 가게는 ‘그럴 수 있다’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점원의 말과 행동은 ‘그래야 한다’에 가까웠다.


‘당신 잘못이니 당신이 해결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새 도넛을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도넛 가게는 다시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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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넛 가게가 놓친 ‘기본’


도넛 가게가 놓친 ‘기본’은 무엇일까?


나는 ‘고객’이라고 생각한다.


도넛 가게 입장에서의 기본은 ‘매출’이나 ‘도넛’이 아니다.

결국 도넛 가게는 도넛을 팔았고, 땅에 떨어진 도넛을 치우는 수고도 덜었기에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명의 고객을 잃었고, 내가 무슨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나쁜 후기를 남기지도 않았지만 안 좋은 경험은 분명히 다른 고객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도넛 가게의 입장만 고려한 나머지 고객의 입장이라는 ‘기본’을 놓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떨어뜨린 사람보고 주워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가게 측에서 치워야 하고 큰 손해가 아니라면 새 제품을 제안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당장은 손해가 될 수 있겠지만 고객은 분명 이 도넛 가게를 친절하고 사려 깊은 가게로 기억하고 다음에 재방문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어묵 포장마차에서 있었던 일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하나 사 먹은 적이 있다.


어묵 가격은 1개에 500원, 나는 2개를 먹고 천 원을 지불하고자 카드를 내밀었다.

여기서 직원의 한마디. “다음부터 천 원은 현금 주셔야 해요. 이번에는 해드릴게요.”


현금을 달라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카드 결제를 허용한다는 것은 더 황당한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현금 결제 유도가 불법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탈세와 카드 수수료 절감에 유리한 현금 결제는 소액의 경우 빈번히 요구되는 경향이 있는데, 카드 수수료가 건당으로 과금되는 경우 지불되는 금액에 비해 카드 수수료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큰 금액은 최근에 현금으로 아예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천 원짜리 몇 개 정도 혹시 가지고 있으면 내라는 식으로, 상대적으로 지불의 진입 장벽이 낮은 탓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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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번에는 해드릴게요’라는 말


말하고자 하는 기본은 현금 결제 유도의 부당함이 아니다. (물론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것은 부당하며 탈세 조장 행위이다)


‘이번에는 해드릴게요’가 더 기본을 망각한 말이라는 생각이다.


우선 나는 공짜로 어묵을 먹은 것도 아니고, 카드 결제가 잘못된 행동도 아닌데 직원에게 저런 ‘선심성’ 말을 들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번에는 해준다니, 그럼 다음에는 안 해준다는 건지, 나를 기억이라도 하겠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더군다나 카드 결제를 해주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는 전혀 ‘선행’이 아니고 배려를 받은 행위도 아니다.

‘이번에는 해준다’는 말은 가게가 고객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이다.

설사 그것이 고객에게 베푸는 정말 호의이고 특별한 혜택일지언정, 그 말 한마디로 인해 고객은 감사하다는 마음이 정말 눈 녹듯이 사라진다.


5. 고객이 기본이다


고객이 기본이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고객이 그 가게를 이용하기 위해 지켜야 할 행동 수칙 같은 것은 없다. 안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고객이 받은 특별한 혜택이나 가게의 배려가 이번에만 적용된다고 기억할 이유도 없다.


가게는 고객을 선택할 수 있지만, 고객 역시 가게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단순히 제품의 품질이나 가격만이 아니라, 고객으로서 존중받는 경험 전체다.


작은 친절 하나가 단골을 만들고, 작은 무례함 하나가 고객을 잃는다.

그것이 서비스업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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