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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Oct 20. 2024

비가 새던 날, 마음도 열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감정의 폭발은 종종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서 벗어나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잠시 피할 여유를 가지면, 감정의 크기가 증발된 듯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 순간 억지로 감정을 피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감정을 건강하게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로 이어진다.



우간다에 처음 왔을 때 매일 화가 치밀었다. 비가 새는 집, 개미가 들끓는 벽과 화장실, 불쑥 끊기는 전기, 외출이 어려운 교통 환경. 좋아하는 카페도, 친구들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곳도 없었다. 특히 아이들이 겪는 불편함과 결핍을 볼 때면 마음 한구석에서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왜 여길 왔지? 이렇게 살려고 온 건가?'라는 후회와 짜증이 나를 잠식했고, 애들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적응되었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었던 불편함이 차츰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되어갔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랜턴을 켜고 나누던 대화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고, 전기가 끊길 때마다 냉장고 음식을 꺼내 이웃들과 나눠 먹던 순간들은 따뜻한 추억으로 남았다.


며칠 전에는 억수같이 내린 비가 결국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예전 같았으면 투덜투덜 폭발도 했다가, 당황하고 멍하니 앉아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그럴 수도 있다며 여유까지 부렸다. 여기에 아이들은 평소처럼 배고프다며 장난을 쳤고,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났다. 이제는 비가 새고 전기가 자주 나가도 쉬이 짜증 나지 않는다. 감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이 불편한 상황들 속에서 적응했고, 더 이상 화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들은 나를 더 익숙하게 만들어 주었고,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감사할 이유를 찾아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모든 불편함에 적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을 어렵게 한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기질을 가진, 또 대화로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관계가 떠오를 때면 그럴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전기나 비 같은 생활 문제에는 이제 익숙해졌지만, 그 감정만은 쉽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에서 화를 다스리는 일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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