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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Oct 24. 2024

미리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이들을 처음으로 책상 앞에 앉혀 연산과 국어를 가르친 날은 지금도 생생하다. '선행학습'이 필수라고 말하는 주위 이야기에 자극받아,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뭔가 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다른 한국 엄마들처럼, 내 아이들이 뒤처지지 않길 바랐고, 그 마음으로 아이들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학습 계획표를 세우고, 일정 시간 동안 무조건 앉아서 공부를 하도록 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는 마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조급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을 앞에 앉히고 연산 문제집을 펼치게 했다. 간단한 덧셈과 뺄셈 문제였지만, 아이들은 지루해했고 집중을 못했다. 옆에 앉아 있는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왜 이렇게 못할까?'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한글을 가르치는 시간도 다르지 않았다. 동화책을 읽히고, 내용을 요약하게 시켰는데 아이들은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내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자, 내 안의 좌절감이 쌓여갔다. 결국,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목소리는 더 커졌고,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교재는 바닥에 던져져 있었고, 나도, 아이들도 지쳐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며칠이 지나고 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직접 가르치는 일은 그만하고, 학교에 아이들을 온전히 맡기기로. 내가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은 학습의 압박이 아니라, 자유와 즐거움이 아닐까 싶었다. 공부는 학교에서 받는 수업에 맡기고, 나는 그저 아이들의 학습 과정을 지켜보며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그 결정 이후, 나는 진심으로 편해졌다. 그리고 아이들도 더 이상 내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나름의 속도로 성장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주가 학교 수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아왔다. 나는 기뻤고, 이때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선행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잘하는 것을 복습하고 그것을 자신 있게 해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기에 오히려 자신감이 붙고,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처음 가졌던 걱정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한국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뒤처질지 하는 마음은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흔히 '선행학습'이라는 것이 기본처럼 여겨지지만, 이곳 우간다에서는 상황이 다르니까.



사실 우간다 국제학교 교육은 한국과 다르다. 학문적인 성취에 대한 압박보다는 음악, 미술, 체육, 글쓰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배우는 것이 더 중시된다. 한국처럼 학원에 다니며 추가 학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을 따라간다. 그래서 아이들이 한국에 있는 또래 친구들보다는 분명히 뒤처지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이 그 나름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워 오고, 그것을 이야기할 때마다 기뻤다. 그 순간, 학습의 목표가 단순히 남보다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며 배우고 그 과정에서 성장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저 엄마가 정해 놓은 속도에 맞춰서 달려가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만의 방식과 속도로 삶을 배워 나가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도 말이다.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우간다에서 경험하고 있는 삶 자체라는 것을 알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잘 따라가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속도로 자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습의 의미가 아닐까?' 한 번씩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는 한다. 반면에 '미리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질문은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중요한 질문이 아니다. 내가 더 이상 아이들을 무리하게 앉혀 가르치지 않기로 결심한 그날 이후로, 우리 가족의 삶은 평온해졌다. 아이들도 나도 각자의 속도로 배우고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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