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회사 출장에서 만난 한 우간다 선교사님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됐고, 당시 남편은 우간다서, 나는 한국서 이메일을 시작으로 썸 관계에 들어가게 됐다. 남편의 진중하고도 솔직한 첫 이메일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저는 우간다 선교사입니다. 저희가 만남을 갖기 위해서는, 저와 같은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였다. 이런 첫인사에는 답장이니 나발이니 다 필요 없고, ‘네, 좋은 분 만나세요. 저는 아니네요.’ 했어야 맞겠지만, 그때는 달달한 꼬심용 발림 멘트가 없어서 그랬는지, 남자의 담백함에 매료되었다.
같은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당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다고 답한 것을 시작으로, 서로의 얼굴도 못 본 체, 우간다와 한국이라는 장거리 연애가 시작됐다. 톡을 주고받으면 받을수록 ‘아’ 하면 ‘아’로 받아주니, 세상에 이런 내 편도 없다 싶었고, 오늘은 무얼 했는지, 무얼 먹었는지, 한 시간이 넘도록 카톡! 카톡! 을 울렸으면서도, 내일이, 그다음이,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기아대책에 근무하며 새벽예배에 성실했던 때. 우간다와 한국의 시차는 6시간. 5시 새벽예배를 위해 한 시간을 먼저 일어나야 했던 나를- 우간다 기준 밤 10시면 어김없이 모닝콜을 해준 남자. 빠짐없는 그의 이 같은 성실함은 ‘이 사람이라면…’이라는, 배우자로의 생각에 이르게 했고, 4개월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추웠던 2월의 마지막 가까이 즈음, 인천 국제공항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사람다웠다고 할까. 가장 깨끗해 보이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하얀 남방은 우간다의 모래까지 실어 왔고, 아랫도리는 80년대에 대(?) 유행했을 청바지였다. ‘오 마이 갓!!’. 내가 누군가?? 밴드 음악을 좋아했기에 폼 나는 남자를 선호했던 나였다. 기타를 메고 다니진 않더라도, 느낌 아니까. 그런데 이건 아니지. 처음 이메일을 받았던 때로 돌아가, “네! 저는 아닙니다.”라고 물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러! 나! 이민 가방 지퍼를 여는 것부터 준비해 온 선물 하나하나를 꺼내는 남자의 손. 바들바들 떠는 그의 정직한 손에 반하고 말았다. 그 후 우리는 결혼이라는 길로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