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모를 때는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는 '반듯한 줄자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거리를 재다 그 거리가 멀어졌을 때는 여러 손을 가진 '문어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part1. 적당한 거리가 없어서
그때 그이와 관계를 계절로 표현하자면 여름과 겨울이었다. 뜨겁게 타다 차가울 때로 차가워진 관계, 그것이 그이와의 시작과 끝이었다. 20년이고 50년이고 계속해서 볼 사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였다. 글에 대한 관심과 드라마 취향이 비슷해서 끌렸던- 아마도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었지 싶다. 그런데 관계의 명확한 정리 이유를 아무리 쥐어짜고 또 짜서 생각해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건지도...)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몰랐고, 해외살이의 외로움을 사람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었던 데다, 참 많이도 그이를 좋아했었다. (그것이 집착이었다 할지라도...)
친정식구도 솔메이트도 모두 한국에 두고 온 데다 이곳에서는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이미 자녀들을 다 키운 어른들과의 만남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비슷한 시대와 추억을 거쳐 살아온 이를 만났으니 마치 신이 보내준 선물 같았다. 그래서 구름 타고 다니는 것처럼 마음이 늘 들떠 있었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지 하는 말이 가슴 깊은 데에서부터 이해되기도 했다. 그만큼 좋았고 그만큼 잘 맞을 거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상처'와 '헤어짐'이란 말을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정원 가꾸기에 진심이었던 남편이 "빈 땅에 그대로 모두 뿌리면 편하기야 하죠. 그런데 간격을 두지 않으면 얘네들도 힘들어요. 내가 보고 싶었던 정원 모습도 기대하기 힘들고요. 그래서 오래 걸려도 조금씩, 조금씩, 간격을 주면서 씨를 뿌리는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의 말처럼 그때 그이와의 '조금의 간격'이란 건 어느 정도였을까. 멀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놓아버리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때 나는 1센티미터라는 조금의 간격도 두지 못했다.
#part2. 적당한 거리를 재느라
'먼저 사람'과 헤어짐을 겪고,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여러 만남들이 찾아왔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거리를 재느라- 정확히는 거리만 재다 관계를 맺지 못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선과 악으로까지 생각이 이어진 데다 이번 관계는 천국일까, 지옥일까를 여러 차례 고민만 했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를 꺼렸고,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혼자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시간들이 길어지니 외로움과 우울함이 밀려왔고 하고 싶었던 것들에서조차 기운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깊은 터널 속으로 꿈도 기력도 꾹, 꾹 밀어 넣기만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