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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Apr 15. 2024

이곳에서 겪은 '글'과의 권태기

한 번씩 찾아오는 글태기

요즘 글 쓰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 이러는 걸까. 누군가의 선택과 관심을 받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까. 한 매거진 공모전서 당선되고, 브런치 작가도 되고, 힘들지만 꾸준하게 글을 써왔는데 이상하게 요즘은 그냥 글쓰기가 힘들다. 서두가 길었지만 사실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안다. ‘참 부족하다!’가 정답이다. 이런 내 부족함과 마주하기에 쓰기 싫어진 것이 맞다. 더 잘하고 싶지만 실제와 이상 간의 간격이 크니까. 갑자기 글과의 권태기가 찾아온 것이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이어가려는 이유는 글을 쓸 때 경험하는 환희 때문이다. 몰입이 주는 기쁨도 있지만 자간과 행간 사이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때- 그때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지금의 이 어린아이 같은 엄살기간을 잘 보내고 농도가 짙은 글을 써내고 싶다. 언젠가는!! 그러니 주어진 날에 성실하자!! <24년 4월 10일 기록> 


<하나님 아이로 키워라> 책에 적힌 작가 소개란에 '이 삶이 곧 글이 될 거야.'라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이 삶의 밑거름이 된 것은 사실이나 최근에 적은 기록(박스 안에 글)의 '기분'은 육아에만 전념하던 그 시절에도 또 사이사이의 시간들 속에서도 경험했던 바, 모든 문이 나에게만 굳게 닫힌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먼저 글을 쓰고 책을 이들을 보며 배앓이를 스스로에게 안겨준 날이 많았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는지 배가 많이 아팠고, 그에 따른 위염도 종합선물로 따라오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또한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그만큼 기대했던 바가 커서였는지 낙심도 컸고 그 감정에 함몰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너의 삶이 글이 될 거야.'라는 문장을 부적처럼 쥐고만 있었을 뿐, 그에 합당한 삶을 가지도 살아내지 못했다는 현실과 마주했다. 나의 무지를 깨울 매일의 성실로부터는 이미 멀리 있었고, 나 스스로를 방치하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무너져 있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얼마든지 있지만, 진정 나는 글 쓰는 일을 좋아했었던가-란 물음에 확답이 필요했고, 지하 깊은 곳으로 꺼져버린 글에 대한 열정이란 씨앗에 불을 지펴야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박차고 올라설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다 다시 박현숙 님의 <하나님 아이로 키워라>를 집어 읽었고, 가장 처음에 적어둔 나의 손글씨-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너의 삶이 곧 글이 될 것이다.'는 말은 참 따스하다.>를 보고는 더디긴 했어도 천천히 한발 한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되었다. 마치 '퍽'하고 앞으로 넘어질지언정 팔 벌려 대기 중인 부모를 믿고 그 걸음을 떼려는 아이와도 같았고, 그때는 신기하게도 그 걸음이 어렵지 않았고 걸음마저 가볍게 여겨질 정도로 해볼 만했었다.


그렇게 걸음마를 떼고 나니 변함없이 이 길을 응원해 준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흔들림 없는 지지자였고, 방송작가로의 인연으로 맺어진 언니는 언제나 "해봐. 할 수 있어. 너라서 할 수 있어." 이 말 뿐이었다. 말에 말을 더하지 않았던 사람들- 마음밭이 어지러웠던 어떤 날은 그마저도 참 서운하게 느끼곤 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만한 큰 응원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응원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을 인생길에서 좀처럼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책상에 앉기 시작한 것으로 출발해 노트북을 열어 낱말 몇 개, 그러다 한 줄, 한 단락으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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