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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May 06. 2024

우간다에서의 버팀목

나도 쓰고 너도 쓰고

무작정 써 내려갔다. 어떠한 것이든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모니터 속에 적히는 글자들과 나 사이에 친밀감이 더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그 글자 하나하나가 나에게 안부를 물어봐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떨렸다. 그만큼 글이라는 작은 빛이 내 마음에 동력을 일으키게 했다. 그러면서 나와 타인의 삶 구석구석에서 회복이란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란 사람의 내면 변화

사실 나는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우울 기질을 탑재한 사람이긴 하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감정의 나락을 크게 겪는 편이다. 주어진 매일을 큰 문제없이 잘 살아내고는 있었지만 특별할 것 없는 단조로움이 진심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남편을 내조하며 두 아이 홈스쿨링에 에너지를 쏟으며 ‘괜찮다, 잘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이겨내는 듯했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풀리지 않은 딱딱한 응어리로 늘 불편했다. 크기도 작은 것이 한번 지펴지면 불고 불어나서 나의 온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고는 했었다. 응어리의 실체는 언제나 '쓰는 것'으로 귀결되었고, 스스로 저만치 밀어두었던 일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발을 내딛고, 퐁당퐁당 하고 담그면 되는 것이었는데, 왜 그리도 '지금은 못한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크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오랜 시간을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이유로 변명만 늘어놓고 지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단 한 줄의 ‘기록’을 시작하면서 운동 한 시간을 한 것보다도 더한 쾌적함을 맛보게 되었고, 그렇게 글을 쓰며 얻은 좋은 기운을 우간다라는 땅에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에게로 흐르게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쓰면서 회복되는 경험을 하고픈 몇몇 엄마들과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고, 모임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모임은 매일 주어지는 글감에 따라 하루에 세 줄 쓰기였고 이때 쓴 글은 작은 소책자로 제작해 나누기도 했다. 나머지 모임은 조금 더 깊은 주제를 가지고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써냈다.



쓰니까 생각이 정리되고, 이전의 일도 기억나게 됐어요.
감정의 실마리를 풀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모임을 통해 묵혀두었던 블로그에 글쓰기를 다시 하게 됐어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글쓰기가 치유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것이 글쓰기 모임의 피드백이었는데, 일차적으로는 나에게 기쁨을 안겨준 쓰기라는 도구가 다른 이들과의 만남의 선물하는 귀한 매개체라는 것을 경험하고는 ‘나도 쓰지만 너도 쓰는’ 것을 전하고픈 소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고민하던 때에, 포포포 매거진에서 기획한 ‘포텐 취향 클럽’을 지인의 SNS에서 보게 되었고, '이거다!'라는 직감으로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신청했다.


포포포매거진과의 만남

총 5회에 걸친 오픈 세션으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의 줌 모임이었다. 그 모임서 로마에 살며 글을 쓰는 김민주 작가와 그의 책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떤 이에게는 2년, 또 어떤 이에게는 3년이었을지 모를 시간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책으로 나오기까지 7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는 말에서 힘을 얻었다. 나는 언제일까-만 바라보는 삶이 아니라, 오늘 쓰고 내일 꾸준히 쓰다 보면, 나에게 맞는 시간 안에서 열매 맺힐 거라는 믿음이 생긴 거였다. 그리고 로마서 사는 모든 일상이 소재거리가 되는 것을 보며, 나에게는 이미 말할 수 없는 많은 글감을 주워 담을 시기임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그 글감은 결국 ‘나’ 없이는 완성되지 않는 것임도 알게 됐다.


여전히 마음먹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약속이라도 한 듯 전기는 나가고, 전기가 들어왔다 싶으면 아이들 하교 시간과 만나는 것이 이곳 사정이다. 아니 전기가 하루 만에 들어와도 감사할 때가 있다. 환경은 의욕을 따라주지 않지만, 적고 남기는- 무언가를 쓰는 것만이 내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쓰면서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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