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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Jul 06. 2023

어떤 날, 뜻밖의 위로

며칠 전 우간다에서의 첫 보금자리였던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동안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살았다고 자부했거늘, 네 식구 짐 정리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번 이사는 수도인 캄팔라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이사 전문 업체를 통해 진행됐다.


깨질만한 것들은 하나씩 싸서 포개고, 옷들도 옷걸이에 걸어 순서대로 담는 데다, 책장에 책들도 1(원), 2(투), 3(쓰리)하고 숫자를 매겨놓는 모습이 새롭고 놀라웠다. 하지만 이사해 짐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그래, 내가 사는 곳은 우간다야.’하고 현실을 직시하게 했다. 


미리 적어둔 물건마다의 일련번호는 무슨 의미인가- 관계없이 뒤섞인 채로 자리한 책장이며, 싱크대 앞에 고스란히 내려놓기 만한 부엌살림들에, 방마다 옮겨만 놓은 기타 물건들까지- 불평을 늘어놓기 이전에, ‘집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이전 집’은 방마다 수납공간이 달린 곳으로 보이는 대로 넣어두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사한 집’은 방만 덩그러니 여서 이민 가방과 여럿 박스들이 그 짐들을 맡아주는 중이다. 다만 쌓여만 있는 짐들이 주는 스트레스는 오롯이 내 몫이 됐다.


거기에 인터넷 환경도 한몫했다. 이곳도 캄팔라이거늘 집안 곳곳을 안테나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을 찾느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이란- 돌아보니 2017년 이곳에서의 출발은 이보다 더했던 게 사실이고 그런 삶에 익숙했거늘, 올챙이 적 생각을 잊어버린 모습이다. 이 집은 빗물 사용에 전기도 자주 나갔고, 벼룩이며 모기며 벌레도 많았더랬다. 수납공간도 마찬가지. 필요할 때마다 직접 나무를 사다 만들어 사용했었다. 인터넷도 우리에게 적합한 것을 찾고 찾아 이용했었고 불편하단 생각을 크게 못했었다.


고작 1년 하고 반 개월, 모든 것이 편했고 좋았던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일까? 불편함을 감수할 능력이 떨어져 버린 것인지, 불편함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종일 삐죽 대기만 했다. 그러다 어떤 날 아침이었다. 아이들의 알람이 아닌, 새소리에 일어난 날이었다. 아파트에 살면서는 자주 듣지 못했던 새소리 들이었고, 마치 “잘 잤어? 어서 와!”라고 반겨주는 듯 청아했고 그들의 화음에 매료되기까지 했다.


나란 사람은 본래 자연에 위로를 받는 편이 아니다. 벌레를 끔찍이도 싫어해 캠핑을 간다거나 수목원에 가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그리고 모기들은 왜 나만 사랑한다고 여기게 하는지 그래서 나무가 많은 곳은 피하자 주의였는데, 이곳은 나무도 꽃들도 새들도 벌레도 많은- 그러함에도 잘 살아냈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녹녹지 않을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지금의 어려움이 감사함으로 바뀐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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