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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꽃 Sep 03. 2024

처음 개척하는 길

우리말 사전에 ‘비꽃’은 「오랜 가뭄 끝에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꽃보다 아름다워 보일 터이다. 비가 오기 시작할 무렵 손등이나 콧등으로 성기게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을 ‘비꽃’이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그것보다 림태주 시인의 해석이 더 끌린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전에 한두 방울씩 후드득 꽃송이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비꽃’이라고 한다. 이 표현의 꽃은, 그러므로 처음 내는 길의 의미다. ‘비꽃’이 먼저 길을 내야 그 길을 따라 가랑비든 자드락비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건기인가 싶었는데 우기로 들어선 것일까. 사실 이상기후의 영향을 우간다도 피해 갈 수 없기에 시즌의 경계가 점점 불분명해졌다. 비가 오면 우기이고, 그렇지 않으면 건기로 보는 희한한 일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제는 쨍하고 빨래 널기 좋은 날이었다면, 어제는 먹구름 낀 하늘에 바람이 세차게 불다 똑, 똑, ‘비꽃’이 굵게 떨어지면서 자드락 비가 내렸다. 그리고 빗소리를 들으며 남편이 내려준 아메리카노를 앞에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날이기도 했다.


남편은 우간다에서 ICT 관련 ‘초, 중학교 교사 교육 및 대학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어린 자녀가 있는 집이라면 쉽게 알 텐데 오늘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배웠다 해서 우리나라 문장을 술술 읽어내는 기적적인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남편의 교육도 마찬가지. 최선을 다해 가르쳤고 무한 반복하고 있음에도 ‘왜 항상 제자리일까, 변화가 있긴 한 걸까.’ 열매는 언제 맺힐지 모르는 채 그저 믿음 하나 붙잡고 그들에게 변함없이 가는 것이 전부다.


때론 남편이 한국서 대학교수로 일했다면 지금보다는 편했을 것을 왜 이렇게까지 미지의 길을 걷는 걸까 싶은 날이 있다. 이에 남편은 “그러면 누가 해요? 누구라도 시작해야죠. 그래야 누군가가 또 이어가겠죠.”라며 입을 막는다. 남편의 말이 맞다. 누구라도 해야 하고, 누군가가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무언가가 있다.

국어사전에 적힌 ‘비꽃’의 의미처럼 올곧게 살아내고 있는 남편의 길은 우간다에서만큼은 ‘처음 내는 길’이다. 어느 날 가랑비든 자드락 비든 열매가 맺힐 수도, 반대일 수도 있지만 남편의 지금 ‘비꽃 시절’을 열렬히 응원해야지 싶었다.


‘비가 내려서 그런가. 당신과 마셔서 그런가.’ 커피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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