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과 수채화로 일상을 담으며 떠오른 단상
사진을 찍을 때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 그림을 그릴 때도 나는 풍경이나 사물보다 사람을 그리는 걸 더 좋아했다. 그림이라고 해봤자 사실 아주 뛰어나고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세밀하게 담는 정밀묘사나 본격적인 데생은 더욱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던 공간 안에서 작은 캐릭터들이 무언가 이야기를 보여주는 모습,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소소하게 담아냈다. 한 장의 그림에도 스토리가 있기를 바랐을 뿐이며 그 과정에서 언제나 그림을 그리기 전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오래도록 고민하곤 했다.
사진을 취미로 찍으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깨닫게 된 사실은 결국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럴까. 풍경을 찍더라도 그곳에서 살아가는 누군가가 함께 있어야만 프레임이 완성되었다.
전주에서 살던 시절에 그린 그림들에도 늘 내가 사랑하던 장소와 사람들이 함께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 장소들을 특별히 아꼈던 이유도, 결국은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펜 끝으로 그린 선들은 그날의 추억과 감정들을 붙잡는 방식이었고, 사람과 함께한 순간이 그림의 가장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서울로 올라온 이후에는 예전처럼 자주 그림을 그리지는 않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건 연희동에서 살던 초창기에 그린 몇 장의 그림들이다. 낯선 도시에서 외로움을 버티게 해 준 건 따뜻한 연희동 사람들과의 추억이었고, 그래서인지 그 시절 내가 그린 풍경 속에도 언제나 사람들이 있었다. 나 역시 그들 곁에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그림이 꼭 실재하는 풍경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 그것이 흘러넘칠 때 펜을 들어 선을 그었다. 때로는 그 감정이 장면을 불러오기도 했다.
창작이란 때로는 슬픔이나 고독을 토해내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그림은 대부분이 행복을 담는 그릇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결국은 그들의 웃음과 따뜻한 순간을 떠올리게 했고, 자연스럽게 그림 속 이야기들도 행복을 향하게 되었다.
행복한 표정을 짓는 인물을 그리다 보면 나도 어느새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드로잉을 하는 이유일 것이다. 펜으로 그린 선 하나하나가 결국은 ‘살고 싶은 마음’과 ‘행복하고 싶은 바람’을 담고 있으니까.
그림은 내 일상의 기록이자,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