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받는 곳으로 탈출시도하는 대왕문어
그녀는 어찌어찌 대학교는 졸업했었다. 졸업 후 해외 취업하겠다고 싱가포르로 건너갔다. 싱가포르 현지 사장님 밑에서 사수로 있던 조선족 마케팅 사기꾼과 같이 일하다가 결국 나왔고, 한국 와서 경리로 지원한 곳은 공사판이었지만, 경리일이 아니라 하루에 1만 보씩 공사판을 걸어 다니는 안전 업무를 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기름이 가득 들어있는 말통을 양손에 한쪽 씩 들어, 칼바람 뚫었다. 작은 키에 안전모, 안전벨트를 열심히 차고 있는 그녀는 기름통을 열심히 호이스트에 실어 날랐다. 실내 내부까지 나르던 중. 계단에서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땐 공사장 사망사고가 1~2건 일어나던 때라 그녀에게는 산재처리는 언감생심이었다.
다시 방황하던 20대 여성은 자기가 제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회계업무 일이라 여겼다. 그 이후 회계 자격증을 3개를 동시에 따면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었다. 운이 좋게도 한 달 만에 취직이 되었다.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진 외진 산단에 있었지만, 번쩍번쩍한 건물의 외관이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 나도 드디어 회사다운 회사. 나름 괜찮은 곳에 일을 하겠다.’ 라며 입가의 미소를 쓱 지으며, 부푼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내장 속은 사이사이 구더기가 썩어 있었다. 구더기들을 이겨내지 못한 주변 동료들은 점점 퇴사하더니, 큰 사무실에 텅 빈 책상 중에서 덩그러니 혼자 앉아 쭈굴쭈굴한 대왕 문어가 되어있었다. 결국 그 구더기 가득 한 곳에서 대왕 문어 구더기를 뒤집어 씐 채로 한쪽 빨판으로는 회계, 한쪽 빨판으로는 인사, 한쪽 빨판으로는 총무, 한쪽 빨판으로는 안전, 한쪽 빨판으로는 서버 일을 쳐내고 있었다. 게다가 목숨은 연명할 수 있도록 돈을 쥐여주던 구더기 왕관을 쓴 주인은 그 번쩍번쩍한 외관을 만들기 위해 빌린 어마어마한 돈의 이자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법인회생까지 신청하게 되었다.
회생이 시작되자마자, 바뀌는 환경들로 인해, 처음에는 분명 들어갈 땐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눈을 감았다 뜨니 쭈글쭈글 힘없어 보이는 해산물로 변해 버렸다…
미소를 잃은 대왕 문어는 주어진 수많은 일들을 아직도 적응 중인데, 크게 어디선가 불어온 태양초를 품은 빨간 초장태풍이 뺨을 거세게 때리는 듯했다. 대왕 문어 온몸에 초장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녀의 빨판은 열심히 밤새도록 키보드를 두드리고, 현장 가서 체크하고, 많은 사람들의 고충을 처리해 주고, 그러고도 일을 다 끝내지 못해, 어두운 밤 혼자서 한쪽 구석 여러 다리를 끌어안고는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 근무를 하기도 했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그만 두면 되지 않냐고? 반박할 수 있다.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용기도 없었다.
이때까지 다니던 곳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회사라고 생각되었기에.. 회계경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적금 수갑을 차는 게, 그나마 미래를 위한 나은 일이라 여겨졌었다.
처음 들어가자마자 시작한 청년내일채움공제 시스템. 처음에 3년 동안 몇 십만 원씩 적금을 드는 거라 나중에는 목돈이 생겨서 그녀는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그녀를 어디도 가지 못하게 옥죄게 하는 수갑으로 둔갑해 있었다. 처음에는 회계 경력이 없었기 때문에, 손에 들어오는 150만 원이 너무나도 소중했고, 커 보였다. 그것도 쪼개서 미래를 위한 적금에 쏟아붓고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의 급여는 쥐꼬리만 하게 올라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물가도 오르고, 식료품도 오르고, 금리도 오르고 모든 것이 오르는데, 정말 급여만큼은 절대 안 오른다. 사람의 욕심이란 게… 역시 끝이 없는 걸까. 아니면, 이는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처음에는 회계 업무를 하기로 되어있었던 20대 여성. 나중에는 정신 차려보니 회계, 인사, 총무, 안전, 서버를 담당하고 있었던 쭈글쭈글 힘없는 대왕문어.
회생 졸업까지 무수히 치열하게 회사를 다녔던 대왕문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다닌 것일까.
지금 그나마 그녀의 일을 줄여주기 위해서 도와주시는 좋은 분들이 나타났지만, 그건 손톱만큼만 가져갔을 뿐. 점점 그녀의 업무의 강도는 줄지 않았다.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낸 것에 대해 인정을 받지 못한 그녀는 태풍을 휘몰아치며, 화를 내뿜는 것이 맞다. 하지만 5년 동안 몰려온 회의감은 폭풍이 몰려오기 전 고요한 바다처럼 잠잠해졌다. 폭풍우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가 아니라 고요한 바다가 되었다.
고요한 바닷속에서 그녀는 폭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내는 단순히 기다리는 능력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조이스 마이어
그래서 오늘은 그녀에게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날이다.
내일이 돼도, 그날은 그녀에게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날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당연히 부려먹어도 되는 존재 취급받는 이곳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색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오늘 저녁도 그녀는 부동산 공부와 이력서 지원을 한 개씩이라도 해본다.
"타타타타타…”
부족한 자소서이지만, 진심을 다해서 쓰고 있다.
오랜만에 쓰는 자소서와 처음으로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쭉 쓸 수 있는 경력증명서.
5년 동안 그녀가 했던 모든 일들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워드파일 4장이 넘어가버린다.
“나의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과연 있을까.”
대왕문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쉰다.
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기에. 오늘도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날로 여기고 열심히 살아가자.
그녀에게는 더욱이 이직을 좋은 곳으로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진다. 특히 복지가 좋은 곳으로.
그녀에게는 7년 동안 함께 해온 남자 친구가 있다. 문어와 그 남자 친구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사이이다. 그 둘은 꽤나 궁합이 잘 맞는 커플이다. 1년 동안 각자 캐나다, 한국에 있으면서 영통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며, 버티기도 했고, 지금은 부산과 울산으로 떨어지며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한 해 더 이상은 그와 떨어지기 싫은 마음이 커져, 결혼은 하고 싶지만 경제적 여건이 마음에 걸린다.
다 없이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없어도 너무 없는 텅장.
침을 꿀떡 삼킨다. 그리고는 번쩍이는 눈빛.
불끈 쥐는 주먹. 그리고는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키보드를 계속해서 강하게 두드리는 만큼, 미래를 위한 굳건한 마음이 강해진다.
그녀의 단짝과 행복한 미래를 위해. 인정욕구 강한 대왕문어는 오늘도 강한 소망의 빛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오늘이 그 어떠한 날보다 더욱 중요하고 멋진 날이 될 수 있도록.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