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삭으로 치른 장례식과 아버님의 검정 고무 털신. (14장)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 아들을 낳았다.
내 시댁은 2남 6녀, 여덟 남매다.
시가는 경상북도 깊은 산골 작은 마을에 있다.
나는 둘째 며느리다.
둘째라는 이유로 시댁의 크고 작은 일에 얼굴만 비춰도
괜히 더 사랑을 받곤 했다.
둘째 아이의 출산을 일주일 앞둔 어느 날,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감기 몸살로 며칠 고생하시다가
서울로 올라와 치료를 받던 중
급성 폐렴으로 전이되어 돌아가셨다는 연락이었다.
전화를 내려놓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만삭의 배를 두 손으로 감싸 안은 채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말로 부르기 어려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장례식장은 시골 본가였다.
하루에 몇 번 버스가 다니는 곳,
산을 몇 개는 넘어야 닿는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라
공기는 유난히 차가웠다.
차창 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는
젖은 흙냄새와 나무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만삭의 배는 무거웠고
발걸음도 생각보다 더 무거웠다.
시댁에 도착하니
시어머니와 형님, 아주버니,
여섯 시누이와 조카들까지 모두 와 있었다.
나는 소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조문객을 맞이하고
절을 하고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접대하고……
작은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 속의 아이는 유난히 조용했다.
기척이 없을수록
오히려 마음이 더 쓰였다.
아버님은 이 아이를 기다리셨다.
아들이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래서 더 오래 기다리셨다.
하지만 아이를 보지도,
품에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신 채
먼저 떠나셨다.
그 기다림의 끝이
이렇게 허전할 줄은 미처 몰랐다.
만삭의 몸으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
곧 아이를 낳았다.
지금도 그 시기를 떠올리면
마음이 잠시 멈칫한다.
아버님의 장례식에는
남편 회사의 선후배들이 많이 찾아왔다.
시골 마을 입구에는
도시 번호판을 단 차들이 길게 늘어섰고
적막하던 동네가 잠시 술렁였다.
“이 깡촌에서 태어난 게 맞아요?”
누군가 놀라듯 물었다.
그 말이
자랑처럼 들리지도,
모욕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아버님이 살아오신 삶의 자리와
우리가 살아오던 삶의 거리가
잠시 마주한 것뿐이었다.
아버님은 그곳에서 태어나
평생 땅을 일구며
남편과 그 형제자매들을 길러내셨다.
나와 남편은
각자 큰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덕분에
아버님의 마지막을
초라하지 않게, 정중하게 모실 수 있었다.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죄송하기도 했다.
살아계실 때 할 효도를
이제야 하는 것 같아서였다.
아버님의 유물은 간소했다.
집 안에는 정리할 것이 많지 않았고
남길 만한 물건도 거의 없었다.
문 앞에는
오래된 검은 고무 털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창 밖으로 산들이 겹겹이 스쳐 지나갔다.
어디쯤에선가
저 산 아래에서
아버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 같았다.
그 생각에
가슴이 울컥했다.
삶은 때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보낸다.
아버님을 보내드리는 일과
아이를 맞이하는 일이
같은 시간에 찾아왔다.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뒤
나는 아들을 낳았다.
아버님이 그토록 기다리셨던 손자였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뒤,
어머니가 상경하셨다.
어머니는 작은 짐 몇 개를 들고 오셨다.
라면 박스 몇 개와
옷가지가 담긴 가방 하나였다.
계단 아래에 내려놓인 상자들은
어쩐지 가볍고
또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잠시 머물다 내려가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한 사람을 보내고
한 사람을 맞이하고
또 한 사람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 겨울은
내 삶에서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큰 변화의 시간이었다.
이 글은 둘째 아이를 낳기 직전, 시아버님의 장례를 치렀던 겨울의 기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을 보내는 시간과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시간이 같은 시기에 겹쳐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겨울은 제 삶에서 여러 시작이 함께 찾아온 때였습니다.
아버님을 보내드리는 일이 있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일이 있었으며, 시어머니와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도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또 하나의 삶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어른을 모시고 산다는 것,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긴 공부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