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시어머니와 내 생일이 같은 날이었다

– 같은 날 태어난 두 사람의 생일. (15장)

by 이도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음식으로 차려진 생신상."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시골에 혼자 남은 어머니는 아들 곁에 있고 싶어 하셨다.
남편은 막내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자부심이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 되던 날,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오셨다.
잉어를 오래 푹 고아 만든 맑은 물을 소주 댓병에 담아 가지고 오셨다.
아이를 낳은 나를 위해 몸 보양과 모유 수유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셨다.


산후조리라도 도와주시려는 줄 알았다.
며칠 머물다 내려가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는 한 지붕 아래 함께 살게 되었다.
그렇게 스물아홉 며느리와 일흔셋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평생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와 도시에서만 자란 며느리는
삶의 속도도, 기준도 달랐다.


음식 맛도 달랐다.


어머니가 가지고 오신 잉어를 고아 만든 물은 하나도 못 먹었다.
나는 비린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어머니의 성의를 생각해 마셨다가 결국 다 토해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그 한 통을 버렸다.


어머니는 짜고 깊은 맛을 좋아하셨고
나는 담백한 음식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된장찌개를 끓이실 때 소금을 한 번 더 넣으셨고
나는 그 옆에서 물을 조금 더 부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맞은 맛’은 서로 조금 달랐다.


취향도, 성격도, 세상을 보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같은 부엌을 쓰고 같은 식탁에 앉았지만
우리는 자주 다른 나라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에게는 체면보다 본능이 먼저였다.
며느리보다는 아들을, 손녀보다는 손자를 더 노골적으로 아끼셨다.
마음이 가는 쪽으로 손이 먼저 가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운했고,
손녀딸은 가끔 말수가 줄었다.


그 서운함은 크게 부딪히기보다는
부엌 어딘가에 조용히 쌓이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원래 음력 생일을 챙겼다.
결혼하고 나서야 내 음력 생일이 어머니 생신과 같은 날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처음에는 웃으며 말했다.


“참 특별한 인연이네요.”


하지만 함께 살게 되면서
그 겹침은 점점 또렷해졌다.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남편은 괜히 더 조심스러워졌고
집안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맞춰졌다.


그날 식탁에는 미역국이 올라왔다.
며느리인 나는 국을 끓이고, 반찬도 만들었다.


식탁에 놓인 음식들은
대부분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것들이었다.


시누이와 그 가족들이 집으로 찾아오면
나는 내 생일에 시댁 식구들을 맞이하는 사람이 되었다.


또 어머니는 고향 음식이 생각나신다며
가끔 돼지국밥, 물회, 안동찜닭, 태평추(묵과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소부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찾으셨다.
나는 이런 요리는 할 줄도, 먹을 줄도 몰랐다.


어머니는 시누이에게 부탁해 재료를 사 오게 하고는 직접 요리를 하셨다.
남편은 어머니의 음식들을 맛있게 먹었다.


결혼한 지 다섯 해쯤 되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평생
내 생일상 한 번 받아보지 못하겠구나.


그래서 어느 날 조용히 말했다.
“제 생일은 이제 양력으로 할게요.”


그때만 해도 양력 생일을 따로 챙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잠시 서운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더 묻지 않으셨다.
그저 가만히 받아들이셨다.


그렇게 우리는 생일을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 생신은 집에서,
내 생일은 밖에서.


원래 하나였던 날을
음력과 양력으로 갈라 가진 셈이었다.


그 선택이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다.
하지만 숨을 고를 수는 있었다.


하나였던 생일은
두 갈래의 시간으로 나뉘었다.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부딪히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에서 조금씩 거리를 배우고 조율하며 살았다.


우리는 그렇게 7년을 함께 살았다.

✍️ 작가 노트

이 글은 결혼 후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7년을 돌아보며 쓴 기록입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 시골에서 혼자 계시던 어머니는 막내아들 곁에 있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살아가게 되었고, 서로 다른 속도와 기준, 취향 속에서 조용히 부딪히고 배워가야 했습니다.


평생 시골에서 살아오신 어머니와 도시에서 자란 저는 삶의 방식이 달랐고, 음식 취향도 달랐습니다. 작은 차이들이 쌓여 서운함이 되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 글은 그 시간 속에서 느꼈던 감정과, 서로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거리를 배우고 조율하며 살아간 기억들을 담았습니다. 완벽한 화해나 해결은 아니었지만, 그 조용한 부딪힘과 적응의 순간들 역시 제 삶의 일부였음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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