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를 품고 있으면서도 나를 키운 시간. (13장)
1996년, 둘째를 임신했다.
다시 무급 휴직에 들어갔고, 비행을 멈춰야 했다.
아무 일정도 없는 시간이 내게 주어졌다.
첫째와 함께 지내는 시간은 꿈처럼 달콤했다.
아이의 초롱한 눈빛, 달콤한 살냄새.
안아 주고 있으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예쁘면 예쁠수록,
나도 더 멋지고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고,
이와 동시에 나 역시 잘 자라고 싶었다.
이 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도 하나쯤은 남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고민 끝에 일본어를 배우기로 했다.
일본어는 처음 배우는 언어였다.
학원에 등록했다.
태교를 해야 하는데 이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나는 나를 살리는 일을 하며
동시에 태교도 하기로 했다.
큰아이는 만 3세가 되었다.
엄마를 좋아했지만 친구들과의 놀이도 즐겼다.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네 시간씩.
내가 공부하는 시간 동안
아이는 아파트 1층에 있는 놀이방에서
친구들과 함께 여러가지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데려다 놓고 학원으로 향하던 아침,
놀이방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있던 순간이 선명하다.
미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던 시간.
그래도 나는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를 놀이방에 맡긴 오전 열 시부터
다시 데리러 가는 오후 두 시까지.
그 네 시간을 나는 알차게 썼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는 내 품에 안겨 곧 낮잠에 들었다.
나는 그때 다시 책을 펼쳤다.
학원에서 배운 문장을 다시 읽고
녹음된 음성을 천천히 따라 했다.
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흐르는 동안
나의 공부도 조용히 이어졌다.
봄이었다.
외투를 걸쳤다 벗었다 하던 날씨 속에서
배는 아직 티가 나지 않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는 영등포에 있는 학원으로 갔다.
일산에서 영등포까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출근 시간이 지난 버스 안은 한산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교재를 펼치고
귀에는 녹음된 음성 파일을 꽂았다.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듣고 또 듣는 동안
배 속의 아이도 조용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일본어를 듣고 있었다.
여름이 되자 배가 먼저 더위를 느꼈다.
선풍기 바람이 느릿하게 도는 교실에서
일본어는 더 이상 낯선 언어가 아니었고
조금씩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갔다.
가을에는 공부가 제법 몸에 붙어 있었다.
초급을 지나 중급, 그리고 고급으로 올라가며
문장은 비로소 문장답게 들렸다.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 즈음,
일본어가 입에 익기 시작했다.
11월 1일, 둘째를 낳았다.
그해의 봄, 여름, 가을은
그렇게 내 몸과 머릿속에 남았다.
누군가는 태교를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며 한다고 했지만,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익히며 태교를 했다.
돌아보면 참 나다운 선택이었다.
큰 아이를 품에 안고
작은 아이를 배에 품고 있으면서도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열심히’라기보다
조용히, 꾸준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훌쩍 자랐고,
아이들은 그렇게
내가 공부하던 계절 속에서 자라났다.
이 글은 둘째를 임신하며 비행을 멈추었던 시절의 기록입니다. 아무 일정도 없어진 시간 앞에서 나는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과 나를 키우는 시간이 꼭 반대편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 시간을 지나며 알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