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하던 시절의 기록. (12장)
그 시절,
나는 한국에서 비행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북경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Air China 교환 승무원 프로그램이 생긴 것이다.
공고를 보자마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신청했다.
틈틈이 공부하던 중국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첫 번째 파견자가 되었다.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작은 짐 하나를 들고, 새로운 한 달을 시작하러 갔다.
초봄이었다.
이른 아침, 나는 Air China 브리핑에 참여했다.
중국어로 빠르게 오가는 안내와 지시들,
낯선 억양이 귀를 스쳤다.
나는 아는 단어들을 붙잡으며
겨우 흐름을 따라갔다.
브리핑을 마치고
중국 승무원들과 함께 Air China 객실 운항 순환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공항 활주로를 길게 가로지르며 달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활주로,
아직 차가운 공기,
창문 너머로 스치는 알싸한 이른 아침 냄새.
그 광활한 풍경 속에서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 언어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비행을 준비하고 있는 나.
국제화된 내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고
어쩐지 조금 짠하기도 했다.
그해 봄,
나와 남편은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중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익히고 지역 문화를 배우고 있었고,
나는 하늘을 오가며
낯선 언어와 사람들 속에서
나의 세계를 넓혀 가고 있었다.
이제 애써 가까이 왔지만
그는 또 다른 공간에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나는 Air China 승무원들과 함께 비행을 했다.
기내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을 맡았고,
한국 승객들을 위한 전담 서비스를 담당했다.
중국어로 동료 승무원들과 소통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느 날, 한 Air China 승무원 동료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소박한 아파트였다.
부엌에서는 볶음 요리 냄새가 퍼졌고
작은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 동료의 남편은 교수였다.
그런데 저녁이면 택시 운전을 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중국 북경 사람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직함과 생계가
한 사람의 하루 안에 함께 들어 있는 삶.
그날 이후
북경은 단순히 남편이 있는 도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나라의 삶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공간이 되었다.
비행을 마치고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유니폼을 벗고 짐을 풀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남편이 서 있었다.
지역 탐방을 마치고 다시 북경에 온 것이다.
전보다 조금 더 야위어 있었다.
남편의 하루는 바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연구 지역을 오가며 자료를 정리하고
낯선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다.
우리는 누가 더 힘들었는지는 묻지 않았다.
서로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북경에서 일하는 동안
우리는 가끔 만났다.
부부인데
마치 연인처럼.
그 시간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함께 있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기대기보다
각자의 삶을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삶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글은 젊은 시절 북경에서 보냈던 한 달의 기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서로 떨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단련하던 부부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비행을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은 저에게 세상을 조금 더 넓게 이해하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시절 우리는 함께 있지 않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