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해 봄, 나는 아이를 두고 비행을 갔다. (10장)
아이를 낳고 간절히 아이 곁에 있고 싶었지만,
나는 아이 곁에만 있을 수 없었다.
휴직기간이 다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다시 비행을 준비해야 했다.
일을 놓지 않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이
이제는 현실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계속 계산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생활, 당첨된 집 대금, 엄마의 생계,
그리고 우리 가족의 미래.
당첨된 집은 아직 완공도 되지 않았지만,
석달마다 500만 원이 넘는 돈을 꼬박꼬박 내야 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나는 숫자를 놓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다시 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무렵, 남편에게도 중요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가 백일이 되기도 전,
남편은 회사에서 중국 지역 전문가로 선발되었다.
1년간의 유학이었다.
그가 오래도록 바라던 기회였다.
신혼이었고,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렸다.
하지만 우리는 고민 끝에 그 길을 선택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와 함께 한국에 남았고,
남편은 중국으로 떠났다.
그때 우리는 아직 우리 집이 없었다.
당첨된 아파트는 아직 건설 중이었고,
안산에 살던 시누이 집 문간방을 얻어
반년을 지냈다.
비행을 가는 날이면
어떤 날은 엄마에게,
어떤 날은 시누이에게 아이를 맡겼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던 날,
아이는 내 품에서 막 내려와
현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내가 가방을 들자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이 얼굴을 오래 바라보지 못했다.
보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이는 내 코트를 붙잡은 채
손가락에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틈 사이로 보이던 아이의 눈이
마지막까지 나를 따라왔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행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늘 아이 생각이 맴돌았다.
아이 또래의 울음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해, 난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기내 방송을 할 때면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편안한 여행 되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하며
마음속으로는
“엄마 갈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 또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걸었지만
속으로는 늘 아이를 안고 다녔다.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꼭 안고 한참을 놓지 못했다.
그 시절, 나는
‘엄마’와 ‘직업인’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하며 살고 있었다.
아이와 떨어져 있었기에
나는 아이를 더 절실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일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아이의 삶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나는 엄마와 시누이의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했다.
할 수 있는 만큼의 마음과 돈을 늘 함께 보냈다.
고맙게도 아이는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자라주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고난과 역경을 요구했다.
아이의 컨디션, 비행 스케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의 시간까지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하고 조율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다시 비행을 했다.
일하는 동안은 누구보다 열심히 잘 하려고 애썼다.
그 일의 보람과 성과도 좋았다.
그때의 나는
일을 놓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에게 돌아갈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밤 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미안함과 안도, 그리고 책임감이 함께 밀려왔다.
떨어져 있는 시간은
우리를 멀어지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자의 자리를 지키게 만들었다.
그 1년은 쉽지 않았지만,
그 시간은 우리 가족을 약하게 만들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있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어느 봄,
아이가 막 걷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먼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남편이 있는 중국으로 향했다.
이 글은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일을 놓을 수 없었던 한 엄마의 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엄마로서의 마음과 직업인으로서의 책임 사이에서 매일 흔들리던 날들을 담았습니다.
계산과 선택, 미안함과 다짐이 뒤섞인 순간들을 숨기지 않고 적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지키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