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그날, 나도 태어났다

–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9장)

by 이도화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날의 전율과 사랑이 따뜻하게 담긴 순간."

아이를 기다리던 어느 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맑고 고요한 곳이었다.
바람도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주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손길.


고개를 내려다보니
내 손가락에 금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감각은 오래도록 손끝에 남아 있었다.
보이지 않는데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처럼.


며칠 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문득 알았다.
그 꿈이 아이의 인사였다는 것을.


태몽은 금반지였다.
세 개의 반지 중 하나가
내 손가락에 조용히 끼워지는 꿈.


사람들은 웃으며 말했다.
“복덩이가 오려나 보다.”


그 말이 그저 따뜻하게 들리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나는 임신한 몸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지하 슈퍼마켓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서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값을 흥정하며 하루를 채웠다.


다리는 붓고 허리는 저렸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숫자를 두드리며 태교를 하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가끔 그 꿈을 떠올렸다.


내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


그 반지는
부와 행운의 상징이라기보다
나와 아이를 잇는 조용한 약속 같았다.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이미 내 삶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와 있었다.


1993년 9월 22일,
우리 부부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작고 따뜻한 몸이
내 가슴 위에 올려지던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전율이 밀려왔다.


아,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눈물이 고였다.
기쁨 때문만은 아니었다.
두려움과 책임, 그리고 결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나는 다짐했다.
이 아이를 세상 누구보다 잘 키우겠다고.
그리고 더 강해지겠다고.


그 다짐은 막연한 각오가 아니라
내가 지나온 시간 위에 내려앉은 결심에 가까웠다.


나는 아이의 예방접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보건소의 혜택을 꼼꼼히 챙기고
또순이처럼 이것저것 따지며
현실을 준비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은
사랑만으로는 부족했다.


돈이 필요했고,
시간이 필요했고,
정보가 필요했고,
무엇보다 현실을 견디는 힘이 필요했다.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와 함께 장사하던 시간들,
임신한 몸으로도 포기하지 않았던 하루들,
휴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삶을 놓지 않으려 했던 선택들.


아이를 안고 있던 그날,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 시간들이
나를 진짜 엄마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는 그렇게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시간은
이 아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쓰이기 시작했다.


✍️ 작가 노트

금반지 꿈은 아이의 인사였습니다.

아이를 낳은 날, 저는 엄마가 되었고 두려움과 책임을 배웠습니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났고, 그날 이후 저의 시간은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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