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그러나 함께
남편의 생일을 깜빡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침을 차려 먹고 있었다.
미국에 사는 딸이 가족 단체방에 올린 메시지를 보고서야 날짜를 알았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남편도 자신의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멀리 사는 아이들의 생일은 한 달 전부터 달력에 표시해 둔다.
택배를 보내고, 통화 시간을 맞추고, 혹시 서운해하지는 않을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그런데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의 생일은 그렇게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요즘 나는 갱년기를 지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첫발을 디딜 때마다 발바닥이 욱신거린다.
족저근막염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어쩌면 나이가 몸으로 먼저 오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아이를 키우며 해외에서 보낸 시간이 이십 년을 넘었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관계가 자연스럽게 끊어졌고,
나는 사람보다 시간을 더 많이 만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이 남편은 출장과 사회생활로 사람들을 이어갔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쌓아왔다.
지금도 그는 바쁘다.
결혼식, 동창 모임, 은퇴자 모임. 오늘은 장례식에 다녀왔다.
그의 하루에는 늘 사람들이 있고,
내 하루에는 조용한 시간이 있다.
예전에는 그 차이가 서운했다.
그는 밖으로 나가고 나는 집에 남는다는 사실이,
이유 없이 혼자 남겨진 기분을 만들었다.
괜히 말이 짧아지고, 별일 아닌 일로 마음이 상했다.
이제는 조금 안다.
우리는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는 사람들 속에서 숨을 쉬고,
나는 글을 쓰며 조용히 나를 살아낸다.
남편이 문을 닫고 나가면 집은 금세 조용해진다.
물 올리는 소리, 원두가 젖는 냄새, 컵이 식탁에 닿는 소리.
이런 소리들이 집 안을 채우면,
나는 그제야 오늘도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걸 안다.
생일을 잊은 일은 사소하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 나를 멈추게 했다.
늘 곁에 있다는 이유로 그를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니었는지,
조용히 미안해졌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지만
같은 속도로 시간을 지나지는 않는다.
함께 늙는다는 건
서로 다른 속도를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요즘에서야 배운다.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나는 주방에서 커피 물을 끓이고,
작은 선물과 따뜻한 말 한마디를 준비한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다시 한 식탁에 마주 앉는다.
말없이 밥을 먹고 하루를 나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오늘은 조금 늦은 축하를 건넬 생각이다.
거창한 이벤트 대신,
작은 선물과 따뜻한 말 한마디로.
우리는 이렇게,
다른 속도로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