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는 시간
봄의 문턱에서
봄이 오면 세상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임은 가볍고 분주하다. 시작의 기운이 공기 속에 번진다.
이제 3월이다.
캠퍼스에는 신입생들의 웃음이 번지고, 마른 가지 끝에는 연둣빛이 오른다. 사람들은 새로운 시간표를 꺼내 들고, 저마다의 다짐을 정리한다.
그러나 나에게 3월은 정리의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올해 나는 만 60세가 되었고, 내가 서 있던 강의실은 하나둘 계약 종료라는 이름으로 닫히고 있다.
“이번 학기로 마무리됩니다.”
정중한 말은 짧았지만, 그 뒤에 남은 공백은 길었다. 강의가 줄어드는 만큼 하루의 일정도 비어 갔다. 오랫동안 나를 설명해 주던 이름표가 조용히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한동안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해 왔는가.
기억을 더듬으면 강의실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질문을 주고받던 순간들, 수업이 끝난 뒤 건네받던 짧은 인사, 눈빛 속에 담겨 있던 기대와 긴장. 그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라, 내가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정리는 단순한 계약의 종료가 아니라, 한 역할에서 물러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봄의 나무를 바라보다가 생각이 멈춘다.
잎은 해마다 달라지지만,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강의가 줄어든다고 해서 내 안에 쌓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계약은 끝날 수 있어도, 그동안 길러온 사유와 태도는 남는다. 나는 직함으로만 존재해 온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멈춤이 불안했다. 일정이 비어 있으면 뒤처진 듯했고, 가만히 있는 시간은 쓸모없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비어 있는 시간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다음 호흡을 준비하는 여백이라는 것을.
어느 날 오후, 창가에 앉아 봄 햇살을 받았다.
겨울보다 분명히 따뜻했지만 서두르지 않는 온기였다. 그 느린 빛 아래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제는 속도를 조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60이라는 숫자는 끝을 선언하는 문장이 아니라, 덜어냄을 배우는 쉼표에 가깝다. 더 붙드는 대신 놓아 주는 일, 더 증명하는 대신 스스로를 신뢰하는 일. 그 연습이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과제처럼 느껴진다.
멈춘다고 해서 인생이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요 속에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봄은 겨울처럼 머물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가능성을 건넨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다음 장을 넘기려 한다.
예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리듬으로 걸어가기 위해서.
강의실이 아니어도 괜찮다. 직함이 아니어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나로 자라고 있다.
잎이 떨어진 자리에서 새 잎이 돋듯,
놓아준 자리에서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이 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