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나의 삶을 읽고 있다

잠시 멈추자 보이기 시작한 것들

by 이도화
"도서관에서 내가 사랑하는 창가 옆 자리"

바쁘게 살던 시간이 잠시 멈추자
나는 다시 나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오랫동안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 몇 개의 강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이 갑자기 내 앞에 놓였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오랫동안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 것처럼 숨이 고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브런치에 글도 자주 올리고 나름 재미있게 살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내가 쓴 글에 ‘좋아요’를 눌러 준다. 그 작은 표시 하나가 묘하게 힘이 된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여전히 누군가의 격려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요즘 나는 내가 살아온 시간을 글로 옮기고 있다.
그저 하고 싶어서 한다.


사람은 어느 나이가 되면 문득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떤 길을 걸어 여기까지 왔는지 말이다.


내 삶의 궤적을 글로 옮기다 보면 이상하게도 또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일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 나의 궤적을 그려 가다 보면 내 삶에도 나만의 무늬 하나쯤은 남지 않을까 싶다.


요즘 나는 우리 아파트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책장이 늘어선 조용한 공간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책을 한 권 꺼내 들고 천천히 읽는다.
예전에는 시간에 쫓기듯 책장을 넘기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한 줄 한 줄을 아껴 가며 읽는다.


가끔은 책을 읽다 말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눈은 글을 따라가지만 마음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글줄을 따라 읽다가 문득 행과 행 사이에서 나 자신을 만나기도 한다.
어쩌면 독서란 글을 읽는 일이 아니라 행과 행 사이에 나를 채워 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살다 보니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무엇이든 얻고 싶다면 먼저 생각해야 하고, 결국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과 행동 위에 정성이 더해져야 한다.


정성이란 퍼져 있는 햇빛을 한 점으로 모으는 일과 비슷하다.
돋보기 아래 모인 빛이 어느 순간 작은 불꽃을 피워내듯, 모아진 정성도 결국 삶의 어딘가에서 불꽃 하나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요즘은 다시 묻게 된다.
이제 나는 어디에 정성을 쏟으며 살아야 할까.


사람은 물과도 비슷한 존재인 것 같다.
세상 속에서 함께 흐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놓치기 쉽다.


무엇이든 어느 순간까지 차오르면 다른 모습이 되는 것 같다.
물도 100도가 되어야 끓고, 씨앗도 충분히 자라야 비로소 꽃을 피운다.


그래서 가끔은 나를 스스로 한곳에 가두어 둘 필요가 있다.
넘칠 때까지.


나는 요즘 하고 싶은 것들을 종이에 적어 본다.
늘 계획을 세우면 작심삼일로 끝나기 일쑤였던 나지만 그래도 세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여전히 많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삼일 간격의 행동이 이어진다.
그 행동이 쌓이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결국 나를 조금씩 바꾸게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그렇게 변한다.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사소한 반복으로.


오늘도 나는 많은 것을 읽고 보았다.
하지만 하루가 끝날 때 조용히 앉아 생각해 보면 눈에 담은 모든 것이 삶에 남는 것은 아니다.


잠들기 전, 홀로 하루를 정리하며 마음에 담은 것들만이 결국 내 삶의 궤적에 새겨진다.


어쩌면 나는 요즘 그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를 살아가며 흘려보낼 것과 마음에 남길 것을 천천히 가려 내는 일.


그리고 그렇게 남겨진 것들로
나는 다시 나의 궤적을 그려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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