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그 겨울, 나는 다른 삶을 시작했다

그 겨울, 내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by 이도화
"추운 북경 공항에서 아이 손을 잡고 서 있는 나”

2003년 12월 30일, 나는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낯선 겨울 공기 속으로 들어갔다.


한 해가 끝나가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아홉 살, 여섯 살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나는 북경 공항에 내렸다.


남편은 이미 몇 달 전
북경으로 발령을 받아
그곳에서 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비행기 문을 나서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세게 때렸다.


“와… 춥다.”


아이들이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북경의 겨울 공기는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바람은 거칠었고
공기는 건조했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목 안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예전에 승무원으로 일했다.
여러 나라를 다녀본 경험도 있었다.
그래서 낯선 도시쯤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은 조금 달랐다.


여행자가 아니라
이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삶은 쉽게 돌아갈 수 없다.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나는 천천히 공항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순간
우리 가족의 새로운 삶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그해 가을
남편이 북경 사무소장 발령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소식은 우리 가족 모두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때까지 한국에서의 삶은 늘 빠듯했다.


집을 마련하고
생활을 꾸려 가느라
마음에 여유가 많지 않았다.


IMF를 지나며
은행 빚도 조금씩 늘어났다.


해외 발령 소식은
뜻밖의 숨통처럼 느껴졌다.


전세 보증금을 빼
일부 빚을 갚았다.
그래도 여전히 빚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마치 오래 짊어지고 있던 짐을
잠시 내려놓은 것처럼.


나는 15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승무원으로 보낸 시간이었다.


하늘에서 보낸 12년,
10,000여 시간의 비행.
그리고 3년 동안의 지상 근무.


그렇게
나의 첫 직장 생활이 끝났다.


이삿짐을 싸며
한국에서의 삶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쓸 만한 가구와 화초는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승용차도
남동생에게 주었다.


신기하게도
하나씩 비워 갈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은
무언가를 더 가질 때보다
비워 낼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것을.


북경의 겨울은 황량했다.


바람은 매섭게 불었고
넓은 도시는
어딘가 거칠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낯선 공기 속에서
나는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다른 삶이 시작되는구나.


그때는 몰랐다.


이 낯선 도시에서의 선택들이
내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바꾸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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